버려진 것도 누군가에겐 삶이다
버려진 것도 누군가에겐 삶이다
  • 제주신보
  • 승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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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이런저런 폐지들이 거실 한쪽 박스 안에 수북하다.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한 이후 버릴 것이 생기면 요일별 쓰레기 배출 분류표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종이는 종이류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류대로 일일이 분리하고 납작하게 만들어서 분리함에 넣는다. 처음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롭다는 생각도 했지만 아침마다 잘 정리된 재활용품을 수거해 가는 환경미화원을 보면서 마음이 뿌듯하다.

거실에 모아둔 폐지를 버려야지 하면서도 며칠째 뜸을 들이고 있다. 왜일까. 얼마 전, ‘폐지 줍는 노인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쓰레기장이며 골목길이며 폐지가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니 그냥 버릴 수가 없었다.

교통사고 위험률이 높은 환경에서도 가난은 사지를 밖으로 내몰았다. 그 속에서 주운 폐지 값은 대략 5000원에서 6000원, 많게는 8000원이었다. 한겨울 새벽에는 손이 오그라들고, 한여름 새벽에는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그마저도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수입해가던 폐지를 중단하고 말았다. 킬로그램 당 120원 하던 폐지 가격이 40원까지 떨어졌다며 한숨을 내쉰다.

세상에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최저 생활비가 적어지는 변화 앞에 위태롭게 서 있는 노인들의 삶은 얼마나 더 팍팍해질지. 구석에 밀쳐둔 폐지 박스를 보니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아려 온다.

한낱 쓰레기로 보였던 것들이 이젠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식당이며 행사장이며 쓰다 버린 재활용품들로 넘쳐난다. 콜라병, 소주병, 라면 박스, 우유팩, 온갖 플라스틱들…. 그곳에서도 경제는 존재했다. 빈병들이 모여 시장이 생기고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진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작은 물병 하나에도 누군가의 삶이 되고 희망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소중하지 않은 것들이 없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신문이며 옷가지며 주방 도구들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유행이 변해서, 계절이 달라져서 사들였던 옷만 해도 방안 가득이다. 버리고 다시 구매하기를 반복했던 행위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제 안 입는 옷들을 다시 정리해서 의류 수거함에 넣을 계획이다.

우리나라 노인들 중 재활용 수집자가 9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폐지를 주워 최저 생활을 유지하는 노인들은 그 일마저 사라지면 어쩌나 늘 걱정이시다. 남이 버린 것을 주워 팔아 삶을 이어 가는 사람들. 그 돈으로 라면도 사고 콩나물도 사고 전기료까지 낼 수 있어서 좋다며 활짝 웃던 어느 할머니의 표정이 떠오른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살다 보니, 정작 자신의 노후는 신경 쓰지 못했다. 주름 사이로 흘렀던 땀도 눈물도 무대 위 한바탕 연극이라 생각하게 만들자. 앞으로 좀 더 나은 노후복지가 이루어져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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