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城洞里甚淸幽 죽성동리심청유 맑고 그윽한 죽성골에서/
黃落鋪途自適游 황락포도자적유 낙엽 덮인 길을 한가로이 거닐며/
放下俗情碧空欲 방하속정벽공욕 얽힌 정 푸른 하늘에 날려 보내려하나/
暫時不散宿心留 잠시불산숙심류 예전에 품은 마음 잠시도 떠나지 않는구나/
■주요 어휘
▲竹城(죽성)=제주시 오등동 남쪽에 위치한 옛 마을이 있었던 지역 ▲黃落(황락)=나뭇잎이 누렇게 되어 떨어짐 ▲淸幽(청유)=속세와 떨어져 아담하고 깨끗하며 그윽하다 ▲自適(자적)=아무런 속박을 받지 않고 마음껏 즐기다 ▲游=놀 유. 헤엄치다. 유람하다 ▲放下(방하)=선종에서 정신적·육체적인 일체의 집착을 버리고 해탈하는 일. 또는 집착을 일으키는 여러 인연을 놓아 버리는 일 ▲俗情(속정)=명예와 이익을 바라는 세속적인 생각. 세간의 인정 ▲不散(불산)=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宿心(숙심)=宿志(숙지)=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뜻
■해설
지난 2월 말 옛 죽성 마을 설새미 근처의 맑고 그윽한 길, 낙엽으로 덮여 있는 그 길을 걸으며, 한 때 영욕(榮辱)의 시기가 지나면 낙엽처럼 끝을 맺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삶을 살아가자’라고 여러 번 마음을 다졌으나 생각으로 그쳤다. 칠순이 되어서도 눈앞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 ‘산책(散策)’이라는 시는 마음을 비우려 생각만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나약한 자신을 자책하며 쓴 것이다.
한시의 율격(律格)에 맞게 여러 번 고치고 또 고쳤으나, 공허한 독백의 어설픈 작품으로 이 시를 읽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 시의 운(韻)은 平聲 尤韻(幽, 游, 留)이며, 평측(平仄)은 차례로 仄平仄仄仄平平, 平仄平平仄仄平, 仄仄仄平仄平仄, 仄平仄仄仄平平이다.
특히 전구(轉句, 제 3구) ‘放下俗情碧空欲’의 平仄은 ‘仄仄仄平仄平仄’으로 네 번째 글자가 고평(孤平)이고, 두 번째와 여섯 번째 글자가 ‘仄’과 ‘平’으로 요체(拗體)이다. 그러나 이 구의 제 5, 6, 7자가 ‘仄平仄’으로 협평격(挾平格)이다. 이러한 경우 ‘仄平仄’을 ‘平仄仄’으로 여겨 합율(合律)로 본다. 즉, 두보(杜甫)의 “등악양루(登岳陽樓)” 제 1구 ‘昔聞洞庭水; 仄平仄平仄’의 경우와 같다.
<해설 무운 김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