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코 베인 날
눈뜨고 코 베인 날
  • 제주신보
  • 승인 20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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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환경운동가·수필가

여러 해 전 일이다. 봉사단체의 사무국장으로 30여 명 일행과 함께 도외 답사에 나섰다. 남해안에서 정화 활동과 견학으로 보람된 일정을 마쳤다.

제주로 가는 완도항에 도착했다. 시간이 꽤 여유롭다. 모두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 주변엔 그런 사람들을 기다리는 상가가 주변에 많았다.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사들이느라 짐은 늘어만 간다.

애주가는 배를 타면 그 안에서 마시는 소주 한잔을 기대한다. 애주가는 아니지만 싱싱한 횟감 한 점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싶은 여성회원도 넌지시 기다리는 눈치다.

회원 몇과 근처 활어 시장을 찾았다. 늘어선 가판대엔 싱싱한 활어들이 팔딱거리고 있었다. 보길도에서 갓 올라왔다는 전복도 힘자랑하듯 서로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호객이 치열하다.

맘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와 흥정했다. 30명이 먹을 안줏거리 값이 만만치 않다. 싸게 주겠다며 전복을 권한다. 산지인 보길도에서 사려고 흥정하려다 너무 비싸 보여 사질 않았었다. 산지보다도 더 싸다. 내심 안 사고 오길 잘했다며 2㎏을 주문했다.

눈앞에 있는 저울에 올려놓는데 2.5㎏ 가까이 저울눈이 오른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피소라도 몇 개를 집어 덤이라며 바구니에 넣어준다. 많이 팔아 주니 고마워서 그런가 보다 하며 스티로폼 박스 포장이 끝나길 기다렸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좋은 선물이 될 거라며 흡족해했다.

좌우로 조금씩 흔들거리는 배 안에서 먹는 소주 맛은 일품이다. 거기다 싱싱한 횟감에 꿈틀거리는 전복을 안주로 집어 먹으며 가족과 함께할 저녁 식사를 상상했다.

제주항에서 기다리던 차가 집으로 달린다. 자꾸 전복 상자에 눈이 간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아이들이 달려 나와 반겼다.

전복을 아내에게 건네며 매우 싸게 샀다고 자랑했다. 미소를 머금고 박스를 여는 아내 어깨 너머로 나도 바라본다. 풍성한 내용물에 눈이 휘둥그레질 것을 예상했다.

“에계계 겨우 요것뿐이야?”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스티로폼 박스 속에든 전복이 너무 적어 보인다. 저울을 가져다 올려 보니 2㎏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서 눈 부릅뜨고 바라보았는데, 포장하는 중에 어떻게 덜어내었을까. 소매치기 뺨치겠다. 비싼 전복이니 회로 먹지 말고 두고두고 죽이나 끓여 먹자며 냉동고에 넣는다.

부끄럽다. 속은 것이 수치스러워 속이 편치 못하다. 다시 완도엘 가면 그 사람 면전에다 냅다 욕을 하고 싶었다.

한 사람이 한번 저지른 사기술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곳이 장사가 안 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이 그랬겠지.

서울 가서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이 있다. 난 눈뜨고 코를 베인 셈이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 사기술이 현란한 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

남을 속여 돈을 벌면 당장 이익은 볼지 모른다. 하지만 도끼로 제 발등 찍듯 그 사기술은 드러나고 문을 닫게 될 거다. 그뿐일까, 양심의 가책으로 마음이 편치 못할 거다. 그는 믿음이 없으므로 물건을 살 때마다 속을 걸 셈하고, 속인 걸 떠올리며 마음이 불편할 거다. 제 자식에게도 떳떳치 못하고 부끄럽지 않을까.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앉은 불신, 현기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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