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선수들 말이 어른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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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홀연 U-20 월드컵 열풍이 내습해, 온 나라가 들썩였다. 어린 선수들 참 당돌했다. 죽음의 조, 첫 경기에 지고 그래도 16강 가자 한 게 불끈 8강에 안착했다. 또 이겼다. 드디어 4강. 36년 만의 일이다. 격랑 같은 파도로 국민들이 일어났다.

시차로 중계방송은 새벽단잠에 떨어질 무렵, 하지만 무정 눈에 잠이 오랴, 우리 국민들은 잠들지 않았다. 붉은 악마들이 ‘대~한민국’을 목 터지게 외치며 깨어 있었다. 연장전에 이은 승부차기에 마음 졸이며, 그 순간 대한민국만을 생각했다. 또 해냈다. 독한 투혼이었다. 팔부능선을 넘어선 우리 선수들이 장했다. 새벽 3시에 시작한 경기에 나라가 한바탕 휘청거렸다. 불야성을 이룬 아파트 창, 응원의 소리가 울담을 넘고 동네방네로 넘실거렸다.

결승전, 이제 딱 한 판만 남았다. 이기면 우승. 경기는 새벽 1시, 저녁에 자다 보리라 했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뒤척이다 자리를 박찼다. 방송사가 다퉈 가며 지난 경기의 흐름을 내보내고 있었다. 드디어 결승전. 긴박하게 공이 오갔다. 잘 싸웠지만 우리에게 운이 없었다. 3대 1 역전패. 가슴을 쓸어내렸다.

명색 월드컵이다. 언제 여기까지 왔었나. 그렇게 추슬렀다. 우리 선수들 대단했다. 6월 셋째 일요일은 전날부터 새벽까지 국민들이 잠을 잊은 날이었다. 캔 맥주가 평소의 32배나 팔렸다 한다. 우승은 놓쳤지만 희망을 품어 한껏 행복했다. 기쁨으로 충만했다.

「이방인」의 알베르 카뮈(1913~1960)는 실존주의를 일깨워 준 작가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말에 놀랐다.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축구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축구와 문학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한 그의 말이다. 하마터면, 우리가 그를 소설가가 아닌 유명한 ‘축구 선수’로 기억할 뻔했던 게 아닌가.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축구선수로 뛰다 가난과 폐결핵으로 선수의 꿈을 접었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축구에서 배웠다.” 했다. 축구를 못해 두고두고 안타까웠다는 얘기로 들린다.

나는 우리 어린 선수들, 그 새벽이 있기까지 몸을 던져 가며 뛰었을 것을 생각했다. 스무 살이 채 안된 선수들이다. 언어가 아닌 것이 이토록 치열할 수도 있는가. 그 드라마틱한 승부를 지켜보며 축구를, 인생을 사는 방식을 다시 배웠다.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카뮈의 선택의 목소리가 그 묘리(妙理)를 꿰찼을 법하다.

경기가 끝나고 뒷얘기가 흘러나왔다. 선수들이 주고받은 말은 그대로 감동이었다. 아시아 남자 선수 최초로 골든 볼을 거머쥔 열여덟 살 이강인 선수. 시상식에서 영예의 트로피를 머리 위로 치켜들지도 않았다. ‘막내형’이란 별명답게 한 말, “형들이 많이 도와 줘서.” 또 어느 선수는 “빛 광연이 잘 막아 줘서.”라 했다. 동물적 감각으로 대한민국의 문전을 수호했던 이광연은 “다른 골키퍼들이 뛰었더라도 빛이 났을 것”이라 했다 한다. 자신을 높이기보다 동료를 치켜세운 어린 선수들의 말·말·말. 어른스럽지 않은가.

정치 쪽에서 막말이 마구 쏟아진다. 흙탕물로 더럽혀진 언어는 우리를 울적하게 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지성들, 어린 선수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쾌거를 이룬 우리 선수들에게 흔쾌히 박수를 보내자. 그리고 제발 이쯤에서 각성들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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