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가 보내는 잘못된 정보
두뇌가 보내는 잘못된 정보
  • 제주신보
  • 승인 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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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석, 제주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논설위원

똑같은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가도 그 전에 담갔던 물이 뜨거운 물인지 차가운 물인지에 따라 달리 느껴진다. 사람의 감각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사람의 판단도 믿기 힘들다. 예를 들어, 남들은 다 손해를 보았는데 나만 본전이라면 이득을 보는 것처럼 느낀다. 남들은 다 이익을 보았는데 나만 본전이라면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낀다. 두뇌가 보내는 정보가 언제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다면 이에 속지 않고 대처할 수 있다.

학창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생각은 시험 내용을 한 번만 봐도 모두 다 외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다. 1920년대 어느 날 러시아의 신문사 편집장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취재기사의 목록, 취재장소, 지시사항을 말했다. 신입 기자였던 셰레셰프스키는 편집장의 말을 받아쓰지 않았다. 편집장이 알고 보니 셰레셰프스키는 편집장의 모든 말을 다 외우고 있었다.

심리학자가 셰레셰프스키의 기억력을 조사하였다. 셰레셰프스키는 단어와 숫자로 구성된 문장을 정확히 기억할 뿐만 아니라 거꾸로 외울 정도로 완벽했다. 셰레셰프스키는 30년이 넘는 사건들의 내용과 당시의 시시콜콜한 장면까지도 모두 기억했다. 완벽한 기억력은 잊어버려야 할 것도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는 세월이 지나도 불쾌한 사건들을 잊지 못했다. 불쾌한 사건의 사람들을 잊지 못하고 그 사람들에게 계속 화를 품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마련이지만 너무 세세하게 기억하는 그는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차리는데 힘들었다. 그는 은유적 표현과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추상적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운동하던 중에 이러다 심장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 때가 있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이제는 그만 쉴까 생각하게 된다. 스포츠 생리학자 팀 녹스는 운동선수들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진짜로 육체적인 한계인지 조사했다. 조사결과, 뛰는 사람이 이제는 못 하겠다고 포기하는 순간에 운동선수의 체온은 여전히 정상이고, 근육에는 산소와 연료가 충분히 남아 있으며, 대사 작용으로 생긴 부산물 수치도 적정수준을 넘지 않았다.

인간의 두뇌는 죽음에 이를 정도의 한계에 이르지 않도록 육체적 한계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그만 멈추라고 거짓 정보를 보낸다. 마라톤 선수들이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쏟아냈다면 결승선을 통과한 후에 국기를 두르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도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장거리 종목에 잘 나타나는 현상은 구간별 속도가 느려지다가 막판에 빨라지는 것이다. 두뇌가 목표달성의 끝을 보면 이제 최대한 속도를 올려도 괜찮다고 한계를 재조정하기 때문에 더 빨리 뛰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는 심장이 아니라 두뇌가 정한다. 두뇌의 한계는 거짓이다.

자신의 목표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혼자만의 생각으로 그치는 것이 좋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표를 알리면 창피를 안 당하기 위해서 더 노력을 기울일 것 같지만 실제는 정반대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표를 말하고 나면, 아직 목표를 이루지도 않았는데 두뇌는 목표를 다 이룬 것처럼 착각한다. 거짓된 자긍심이 노력을 기울이는 동기를 줄여버린다. 게으른 두뇌는 사람에게 “열심히 잘했어, 이제는 쉬어도 돼!”라고 거짓 정보를 준다. 게으른 두뇌가 보내는 잘못된 정보에 속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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