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벙커
빛의 벙커
  • 제주신보
  • 승인 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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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벙커(Bunker)는 요새의 한 종류로, 엄폐호(掩蔽壕)를 말한다. 적의 사격이나 관측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엔 일반적으로 대공 방호가 된 지하호를 가리킨다. 대부분 보안시설로 분류돼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

한데 이런 벙커가 그 쓰임새를 잃게 되면 폐쇄되거나 버려지기 일쑤다. 성산읍 고성리 소재 한 지하 벙커도 거기에 해당된다. 이 벙커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비밀 군사시설이었다. 한동안 국가 중요 통신망인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던 곳이어서다.

벙커는 축구장 절반 수준인 2975㎡(900평) 면적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1990년에 지어졌다. 내부엔 1㎡짜리 기둥이 27개나 박혀 있지만 밖에서 보면 흙과 나무로 위장해 산자락처럼 보인다. 군이 관리하다 민간에 넘어간 뒤 20년 가까이 방치됐었다.

▲아미엑스(AMIEX)는 프로젝션 매핑기술과 음향을 활용한 전시 영상을 투사하는 미디어아트다. 수백 개의 빔프로젝트와 수십 개의 스피커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환상적인 몰임감을 제공한다. 전시장 곳곳을 자유롭게 거닐며 공감각적 작품 체험을 하는 게 특징이다.

프랑스 문화유산 및 예술 전시 공간 통합 서비스 기업인 컬처스페이스사가 2009년부터 개발했다. 2012년 첫선을 보인 이후 도시재생의 효율적인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기능을 상실한 장소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폐채석장이었던 프랑스의 레보 드 프로방스 지역이 그 예다. 아미엑스를 도입한 ‘빛의 채석장’으로 거듭나면서 매년 6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가 된 게다. 작년 4월 파리의 낡은 철제 주조공장도 ‘빛의 아틀리에’로 개조돼 각광받고 있다.

▲장기간 도태됐던 고성리 ‘통신 벙커’가 독특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빛의 공간’이란 이름의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변신한 거다. 세계적인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화려한 색채 등을 영상과 음악으로 만날 수 있다.

벽과 바닥에서 그림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에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래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제주의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한 이유일 게다. 지난 23일 고교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도민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벙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