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오름에서의 뇌가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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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대표·산림치유지도사/논설위원

잠에서 깨어나면 머리가 개운하지 않을 때가 있다. 또는 협소한 방안에 오래 머물러 있을 때에도 답답함을 느낀다. 잡다한 생각으로 머리를 짓누른다.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창가로 간다. 창문을 활짝 열어 맑은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때서야 비로소 시원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잠겼던 머리가 완전히 풀리는 것은 아니다. 운동복을 챙겨 입고 집밖으로 나온다. 산책길을 걸으며 활동량을 높인다. 식물들이 건네는 푸른 손짓을 받아 안는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아름다운 선율로 다가온다. 풍겨오는 꽃향기가 코끝을 타고 몸속으로 녹아든다. 땀방울이 송이송이 맺힌다. 그러다보면 무겁게 느껴졌던 머리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새로운 생각들이 샘솟는다.

이렇듯 운동은 삶의 행복과 직결된다. 땀을 흘려 몸속의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낸다. 혈액은 온몸을 타고 곳곳으로 원활하게 공급된다. 그 중에서도 혈액의 15%를 소비하는 뇌가 활발하게 작동한다. 그만큼 뇌에 미치는 자극효과가 높음을 의미한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뇌의 기능은 점차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뇌기능도 근육과 다를 바 없다. 자주 쓰면 자라나고 쓰지 않으면 퇴화된다. 운동을 하면 물을 먹은 나뭇가지처럼 쑥쑥 자란다. 새로운 꽃봉오리가 생기기도 한다. 반복적인 자극에 따라 새로운 뇌 회로가 자리를 잡는다. 뇌세포의 성장을 촉진한다.

이처럼 외부의 자극이나 경험·학습에 의해 변화하고 적응하는 뇌의 능력을 뇌가소성이라고 한다. 한 번 망가져 고장이 나면 영원히 고칠 수 없는 기계부품이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못쓰게 되는 것도 아니다. 유년기보다는 그 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일생동안 자극 정도에 따라 충분히 치유되는 것이 뇌다. 그래서 노년기에 있더라도 새로운 운동이나 학습이 이뤄지면 일정 수준까지는 재생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래서 뇌가소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이뤄진다. 이에는 소리·진동·명상·동작·운동요법 등이 있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요법은 걷기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노먼 도이치도 ≪스스로 치유하는 뇌≫에서 같은 주장이다. “가장 강력한 뇌가소성을 자극하는 것 중에 하나를 꼽는다면 걷기운동”이라고 말한다.

특히 뇌가소성은 규칙적이고 일상적인 동작보다 불규칙적인 리듬이나 새로운 동작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고대 건축물 중에도 미로 통로를 만든 경우가 있다. 또는 뒤로 걷기나 맨발 걷기 등도 일상적인 행동에서 벗어난 새로운 동작으로 자극효과를 높인다.

그렇게 볼 때 제주의 숲과 오름은 뇌가소성을 자극하는 데 적합한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고 할 수 있다. 368개 오름마다 그 크기와 높낮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오름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적으로 할 수 있다. 가파른 경사를 이루기도 한다. 울퉁불퉁 돌길이 있거나 낙엽으로 뒤덮인 푹신푹신한 부엽토길도 있다.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나 평평한 길도 있다. 뇌를 젊게 만드는 길이다.

접근성도 용이하다. 마을 주변에 오름 하나쯤은 자리를 잡고 있다. 차량을 이용하면 원하는 곳 어디든지 1시간 이내로 달려갈 수 있다. 누구든지 조금만 노력하면 ‘맞춤형 뇌가소성 치유’가 될 수 있도록 충분한 환경이 마련돼 있다. 습관성질환이나 퇴행성질환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요즘 오름왕국만큼 좋은 만병통치약 환경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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