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은 모슬포의 눈물이다
유월은 모슬포의 눈물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6)대정현 역사자료전시관 일대(下)
최초로 의병이 일어났던 곳···6·25 때 중공군 포로 머물기도
전쟁 중 부치지 못한 편지엔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바람난장 문화패가 ‘대정현 역사자료전시관’을 찾았다. 1955년에 건립된 옛 대정면사무소 자리에 들어선 이 곳은 외관은 투박하면서 단정하지만 역사의 파노라마를 수록해 놓아 과거의 흔적이 빼곡이 들어서있다.
바람난장 문화패가 ‘대정현 역사자료전시관’을 찾았다. 1955년에 건립된 옛 대정면사무소 자리에 들어선 이 곳은 외관은 투박하면서 단정하지만 역사의 파노라마를 수록해 놓아 과거의 흔적이 빼곡이 들어서있다.

보리 장만할 때의 기억

기억은 과거의 정지된 시간 혹은 멈춤이 아니다. 기억은 물질이다. 우리 몸속을 흘러 다니는 영혼의 물질이다. 사람은 예술이든 공간이든 기록이든 어떤 형식으로든 물질을 기억하려 한다. 그래서 기억은 늘 현재진행형이고 미래형이다. ‘대정현 역사자료전시관1955년에 건립된 옛 대정면사무소 자리에 들어서 있다. 외부는 제주의 현무암을 일정한 규칙으로 가공해 쌓았으며, 외벽 모서리는 벽체를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처리하는 등 투박하면서도 단정한 모습이다. 2005415일에 등록문화재 제157호로 지정되었으며, 방문객들은 시간을 멈추고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적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정현 역사자료전시관 김웅철 관장님이 역사의 한 켠을 풀어놓는다. 김 관장은 과거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묻혀버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 곳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정현 역사자료전시관 김웅철 관장님이 역사의 한 켠을 풀어놓는다. 김 관장은 과거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묻혀버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 곳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아주 오랜 대정읍의 기억 저장소다. 최초로 의병이 일어났던 곳, 4·3사건이 일어나기 전 대정초등학교에서 거행된 3·1절 행사, 6·25전쟁 당시 중공군 포로들이 머물렀던 곳 등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한 켠을 김웅철 관장님의 입담으로 풀어놓는다. 옛 흑백 사진들 속의 풍경 또한 그간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곳 대정읍이 고향인 김웅철 관장은 지나간 과거의 흔적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묻혀버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사비까지 털어 대정현 역사자료전시관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역사관 모습을 다 갖추지 못해 재정적 도움이 절실하다는 안타까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연극인 정민자님이 김웅철의 시 ‘늦은 오월 대정-보리장만 헐 시에’를 옛날 어르신들 목소리로 정겹게 낭송한다.
연극인 정민자님이 김웅철의 시 ‘늦은 오월 대정-보리장만 헐 시에’를 옛날 어르신들 목소리로 정겹게 낭송한다.

그렇다. 유월은 다 익은 보리 이삭처럼 까끄러운 계절이다. 뒤통수가 저릿하고, 가던 눈빛을 멈추게 한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하필 제삿날은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보리 장만할 때다. 연극인 정민자님의 시낭송은 그 옛날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옆에서 듣는 듯 정겨우면서도 어딘가 울큰하다.

할망당 서녘펜으로 배염 닳은 오그라진 질을/쇠질메 우인/보리 혼바리 시끈냥//아바지 조름으로/대천장남 몬 된 큰 아덜은/등짐으로 큰 뭇 반 바리.//그 두이로 조창가는 메누리 등엔/큰 보리뭇 반에 반 바리.//뱃은 과랑 과랑/똠은 잘잘해도/우미냉국 혼사발로 허긴 채우곡.//그늘캐 안에서 흥그는 아기가/깨어나카부덴/드릇 포리 다울리곡.//말젯 성 혹교갔당오건/축항에 강 자리사당 놔 두랜허는/어멍 곧는 소리도 이성//초막초막 허멍 불르는/조근 년 웡이자랑소리.//이슬지기전이/요 보리 다 눌어둬사/요 밴작 저 밴작 허는 장마 전이/도깨질 허영 보리 장만 허곡,//육니오[6,25]國亂나난 군인 나갔단/戰場이서 저승가분/큰 집잇 샛 아덜 여름 식깨도 헐건디.//개역 볶앙 동그랑착에 담곡/쇠멕이레 가는 아덜신디랑/하르방네 외왓디강 물외 동모래기라도 타줍생허라 호는//익은 보리만이나 헌 인정도 있주.

-김웅철, ‘늦은 오월 대정-보리장만 헐 시에전문

보리가 익어가는 마을의 기억을 성악가 박다희, 황경수님의 향수로 대신한다.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에 붙인 이 곡은 눈을 감고 들으면 고향에서 흐르던 실개천과 황소가 들판에서 풀을 뜯는 평화로움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보리가 익어가는 마을의 기억을 성악가 박다희와 황경수님이 ‘향수’ 대신한다. 고향에서 흐르던 실개천과 황소가 들판에서 풀을 뜯는 평화로움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보리가 익어가는 마을의 기억을 성악가 박다희와 황경수님이 ‘향수’ 대신한다. 고향에서 흐르던 실개천과 황소가 들판에서 풀을 뜯는 평화로움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이우근님이 쓴 ‘6·25전쟁 중 어머니께 썼지만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를 시낭송가 김정희님의 먹먹한 목소리로 이어졌다. 눈시울이 붉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참담함에서 막막함으로 돌아서던 시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다시 일어나선 안 될 기억의 역사다. 한 세대가 저물고 또 한 세대가 와도 역사는 기억을 통해 평화를 지켜나가는 힘을 가질 것이다.

시낭송가 김정희님이 참여했던 이우근님이 쓴 ‘6·25전쟁 중 어머니께 썼지만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낭송했다.
시낭송가 김정희님이 참여했던 이우근님이 쓴 ‘6·25전쟁 중 어머니께 썼지만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낭송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저는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중략)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쓰겠습니다.”

 
사회=김정희
시낭송=정민자 강상훈
성악=윤경희 박다희 황경수
반주=김정숙
무용=강세운
사진=채명섭
영상=김성수
음향=최현철
=김효선
후원=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신보, ()제주메세나협회 등

다음 바람난장은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밭담길에서 펼쳐집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