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마을 여행의 시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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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초빙교수/논설위원

지난 주말, 우리 마을 보목동에서는 ‘섶섬지기 별밭 음악회’가 열렸다. ‘동민들께서는 구두미포구로 오셔서 여름밤의 음악을 마음껏 느껴보시라’는 메시지가 수차례나 당도했다. 거북이 머리를 닮은 구두미는 섶섬 앞에 있고, 서명숙 이사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주올레를 걷다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포구’다. 섶섬은 이중섭 화백이 그린 ‘섶섬이 보이는 풍경’으로 인해 서울에서도 은근히 지명도가 높은 명소다. 황순원의 소설 ‘비바리’는 섶섬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로, 영화가 두 편이나 제작되어 전국을 달군 바 있다. 게다가 마을의 명산인 제지기 오름은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제주도를 순회한 끝에 마침내 기슭에다 별장을 지어서 유명해졌다. 어디 이뿐이랴. 보목 포구는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미포(美浦) 중 하나다. 이곳에서 열리는 자리돔축제는 18년째 마을의 브랜드 가치를 축적 중이다. 그리고 한기팔 시인의 ‘보목리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 한 번 사는 맛나게 사는 거 있지. 이 나라의 남끝동 보목리 사람들은 그걸 안다. 보오보오 물오리떼 사뿐히 내려앉은 섶섬 그늘, 만조때가 되거든 와서 보게’라고 노래하는 이들이다. 이상은 제주도의 어디서나 가능한 마을의 이야기를 엮어본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음악회에는 주민들보다 외부인사가 더 많이 왔다. 아마도 장맛비가 예보되는 바람에 갑작스레 행사를 앞당긴 탓이리라. 보목동 사람들은 그만큼 하루하루가 꽉 차게 부지런하다. 가구 대비 해녀 수가 근동에서 제일이잖나. 더욱이 오붓한 지형 탓으로 경작지가 마을 안팎에 인접해 있어 불철주야 바다와 밭일을 넘나드는 구조다. 그래서일까. 바다 풍광이 좋은 마을마다 불어 닥친 카페와 펜션 바람이 비교적 고요하게 지났다. 주민 소유 토지들이 그런대로 보전된 연유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마을 안쪽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하나 둘 규모 있게 생겼다. 해안이 다시 경관보전지역으로 묶이면서 호텔과 펜션들이 마을 안에다 소비인구를 형성했다. 이들은 숙소에 머무는 동안 자연스럽게 마을의 식당이나 가게를 이용한다. 더러는 마을길을 걸으면서 주민들의 일상을 통해 제주의 문화에도 친근해진다. 이른바 착한 여행이 시작된 셈이다. 너무 튀지 않은 옷차림으로 마을 음악회에 참석해서 주민들과 어울리는 사람들은,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도 ‘별들의 밭’으로 해석하는 보목동 사람들에게서 근면의 코드를 읽는다. 지역주민 못지않게 자연환경에 관심을 갖고 쓰레기 발생과 에너지 사용에도 신경을 쓴다. 가급적 주민의 이익을 고려하며, 삶의 가치에도 공감을 나타낸다. 제주도가 지향하는 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질적 관광과 공정여행의 모델로서 마을여행의 진면목이다.

이제 곧 본격적인 여름 여행의 시간. 장마가 끝나면 집집마다 창문이 열리고, 동네마다 여행자들이 찾아들 거다. ‘여행의 이유’를 출간한 김영하 작가의 글을 빌리면, ‘여행은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기 위해서’란다. 이는 제주관광공사가 공개한 ‘2018년 제주특별자치도 방문 관광객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내국인의 여행 이유와 일치하는 내용이다. ‘힐링을 위하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그렇다면 제주의 마을들이야말로 이들-대한민국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제3의 장소가 아닐까. 가정(제1의 장소)과 직장(제2의 장소)의 일상을 탈출해, 레이 올덴버그가 그토록 머물고 싶어 했던 ‘정겨운 공동체’로서 말이다. ‘이웃들끼리 먼 바다의 물빛하늘 한쪽의 푸른빛 키우며 마음에 등불을 켜고 살아가는’ 보목동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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