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출렁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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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초록, 그지없이 곱다. 눈이 머무는 자리마다 색은 엷고 짙으며, 섞이고 어우러진 데다 햇살마저 더해지니 색감은 온통 초록물이라도 받아 낼 듯하다. 차창 밖 풍경은 계절 한 토막을 아예 차창에 오려다 놓은 것처럼 초록으로 출렁인다. 널려진 초록을 좀 더 가까이서 느끼고파 차에서 내려 걸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그리 높진 않으나 튼실한 나무 한 그루가 빌레라 부르는 바위를 가른 채 자라고 있었다. 암반을 뚫고 나와 뻗으며, 몸집을 키우는데 커다란 너럭바위로 뿌리 내린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남실바람에 연초록 이파리 하늘거림이 어찌나 곱던지 그늘 삼아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넉넉하게 자란 모습, 모진 삶을 이겨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짠하게 시려 왔다. 애당초 저곳에 뿌리를 둔 연(緣)으로 햇빛과 물, 공기에 허기지고, 살고자 하는 본능적 힘으로 저 힘든 조건을 다 극복하고 튼실하게 자란 모습 앞에서 마음까지 흔들렸다.

오래전, 아이가 대여섯 살 정도 되던 때였다. 삼십 년 전이니 그때만 해도 동화책 대부분의 결말은 흔히 해피엔딩이라 말하는 ‘왕자는 공주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뭐 이런 내용의 마무리가 주를 이루었다. 책 제목부터가 인어공주,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거지와 왕자 등. 아이가 책의 줄거리에 재미를 느낄 정도가 되자 읽었던 것을 반복적으로 읽어 달라고 떼쓰기 시작했다. 빈 테이프에 아예 녹음시켜 버튼 누르는 방법을 일러 주며 듣도록 했더니 곧잘 익혀 한결 시간이 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글을 익히지 않은 때라 녹음된 소리와 그림책의 글을 맞추며 동화책을 보다가 물었다.

“엄마! 근데 왜 왕자들은 공주하고만 결혼허멘?”

순간 뜨악했다. 별 생각 없이 동화책이니까 읽어 준 것인데, 이런 질문을 받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지금처럼 금수저, 흙수저라는 신조어라도 있었으면 어찌어찌 꿰어 설명할 수 있었으련만, “우리 밖에 나가서 자전거 탈까?” 어쭙잖은 구실을 들이대며 상황을 빠져나갔던 기억이 난다.

조건은 정말 조건일 뿐인가. 문득, 부모는 어디까지 키우면 자식을 다 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유식을 떼고 밥을 먹기 시작하자 ‘다 키웠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지만 아니었다. 군 제대하고도 같은 말을 들었다. 졸업 후 취업했을 때, 그땐 정말 다 키웠다고 생각했었다.

자식 앞에 부모란 자리는 대상을 향한 바라기처럼 늘 그곳으로만 팽팽하게 기울며 감정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받고 또 받아도 받는 이는 늘 허기지고, 부모의 이기적·맹목적인 훈육을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한 채, 충분히 가릴 수 있는 비바람을 애써 자청하며 막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가 물었던 왕자도, 공주도 아닌 탓에 자식 앞에 죄인이 돼서 말이다.

잠시, 바위를 뚫고 당당히 서 있는 나무가 떠올랐다. 0도 아닌, 더 열악한 환경이다. 역경을 딛고 이파리 무성한 나무의 내공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외경심은 한참을 우러르게 하였다. 문제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경험은 축적되고, 반복되는 삶 속에 진정한 자기 가치가 육화되어 내공으로 승화되는 것이 아닐까.

나의 가치는 스스로가 찾는 것이라 초록, 출렁이는 나무를 보며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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