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분노 그리고 화해
역사와 분노 그리고 화해
  • 제주신보
  • 승인 2019.07.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한동안 좌우 대립이 심하더니 요즘은 그로 인한 갈등과 분노가 곳곳에 보이지 않는 뿌리를 내려가는 듯하다. 과거사에 근거한 분노가 현실 역사의 보이지 않는 구성 요소로 자리잡으려 한다. 그것은 편파적 해석이요, 권력 투쟁에 불과한 것이라는 거부와 분노 역시 만만치 않다.

분노는 정신장애와 비슷하다. 분리를 지향할 것에 대해선 어떻게든 연결시키려 하고, 함께 가야 할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분리시키려 하는 것이다.

분노한 사람은 일단 분리를 추구하려 한다. “과거사의 진실에 근거하여 나는 이렇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우리의 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실과 해석을 외치는 동안에 분노는 더욱 더 강력해지면서 자기 권세를 확장해간다. ‘분노할 수밖에 없는 나’와 ‘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그들’ 사이에 깊고 넓은 분리와 간격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분노는 강력하면서도 기묘한 무기가 된다. 일단 분노한 사람은 죽음이 앞을 가로막아도 그냥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다른 모든 무기는 인간이 그 무기를 사용하는데, 분노의 경우는 분노가 인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은 분노에 쓰임받고 있는 중이라 느끼질 때가 있다.

누군가를 향해 분노한 사람은 자신을 철저히 분리시키려 한다. “저런 인간들에 대하여 나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는 ‘분노의 주체성’을 강화하는 동안 주체와 대상 사이의 분리는 더욱 더 선명해져 간다. 분노와 그로 인한 분리가 빠른 속도로 사회 전반을 깊숙이 장악해가는 것이다.

분노의 근거가 초기에는 어느만큼 타당해 보였는데 그 권세가 사회 전반의 존재 근거 되면서 “이 격렬한 분노와 분리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심하게 된다. 우리가 분노해온 그 분노로부터 분노에 근거한 분리로부터 분리되려고 몸부림치게 되는 것이다.

벨기에의 브뤼셀에 어린아이가 오줌을 싸는 ‘오줌 분수’가 있다. 원래의 작품은 1619년에 만들어졌는데 현재의 동상은 1965년에 복제된 것이라 한다. 17세기에 세워진 이 동상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오는데 그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브뤼셀 교외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길잃은 어린 아이가 갑자기 전투 현장에 들어와서 소변을 본 것이다. 전투에 열중이던 군인들 모두가 일단 아이를 살리려고 전투를 잠깐 멈추었다. 아이가 소변을 마친 후에는 서로를 향한 분노도 아이의 오줌과 함께 배출되어서인지 전투는 화해의 분위기로 변하고 말았다. 그 화해를 기념하려고 동상을 세웠다는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과거의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화해를 추구했다면, 전투는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을 듯하다. 과거의 사실과 해석에 근거한 심판과 화해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누가 어떻게 해석해주어도 역사는 그 것만으로 잠들려 하지 않는다.

현재 일본에는 한국을 혐오하고 극우적인 기성세대를 싫어하는 젊은 계층이 꽤 많다고 한다. 온세계를 휩쓸 듯이 한류를 펼쳐가는 우리의 젊은 세대를 생각해보자. 누가 어떤 과거사를 해석을 하든 간에 그 젊은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서 과거사를 들추고 또 해석을 해가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