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독특한 돌 문화-제주 돌담
2014년 제주 밭담은 FAO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 ‘쾌거’
돌담의 기억, 그리고 제주 여인의 일생
한 여자가 서있다. 평생을 돌밭에 묻고 산 얼굴. 길고 가늘게 이어지는 한숨. 고되고 힘겨웠다. 여자의 일생을 모두 지켜봐 온 것은 다름 아닌 돌담. 돌이 전부인 섬에서, 여자는 거친 돌을 치우며 밭을 일구고 삶을 이어왔다. 누구랄 것 없이 가난했던 시절, 섬에서 자식을 키우기 위해선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 단 한 번도 그 자리에 멈추어 서지 않는’ 삶이어야 했다. 스스로 돌담으로 살아가길 자처해야 했다. 그 여인들이 바로 제주의 어머니다. 이정아님의 시낭송이 이어진다.
이 섬에서 바람만큼 흔한 것은 돌이었다.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돌. 돌을 치우는 것이 삶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쌓아올린 돌은 집 안으로 들어가 집담이 되었고, 울타리를 두르며 울담이 되었다. 어릴 적 술래잡기 하던 올레가 되었다가, 땀과 눈물로 젖은 어머니의 일터- 밭담이 되기도 했다. 제주 사람들의 일상 안에서, 바람을 잠재우고 다스리고 때로는 거느리며, 섬을 일구어 낸 제주 돌담. 함께 살면 닮아간다 했던가. 돌담의 생애도 인간의 삶을 닮았다. 이 섬에서 生의 마지막을 끌어안은 것도 바로 돌담이었다. 망자를 품은 산담이 되어 마침내 노동의 고단함을 끝내고 인간과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다.
제주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독특한 돌 문화- 제주 돌담. 세계는 그 가치와 우수성을 인정했고, 마침내 2014년 제주 밭담은 FAO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 공로자 가운데 한 사람, 강승진 박사. ‘제주밭담의 보전은 제주의 농업과 문화와 환경을 지키는 것이며 동시에 미래세대에 전승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 제주 돌담이 얼마나 훌륭하고 소중한 지 새삼 느껴본 시간이다.
세찬 장맛비가 예고됐지만 하늘은 고요하다. 불던 바람도 들숨 날숨을 반복하며 돌담 위에서 숨을 고른다. 오늘도 돌담은 굽이치듯 이어지며 거친 섬 땅 위를 힘차게 누빈다. 生의 솟구침처럼, 살기 위해 뭍밭과 바다밭을 분주히 오가던 제주 어머니들의 삶처럼, 그 뜨거운 生을 기억하며, 낮지만 우직하게 흘러간다. 성악가 윤경희님의 구성진 ‘제주도 타령’과 함께 우리네 마음으로 흘러든다.
살면서 제주 돌담을 이렇게 가슴 시리게 만나본 적이 있던가
월정리 밭담길 한 가운데서 다시 만난 바람난장
우리는 행운아다
사회=김정희 해설=강승진 박사 그림=홍진숙 시낭송=김정희·이정아·이혜정 성악=윤경희 아코디언=김민경 리코더=오현석 사진=허영숙 영상=김성수 음향=최현철 글=김은정 후원=제주특별자치도·제주신보·㈔제주메세나협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