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즈카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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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일제 식민지 잔재 청산 조례안’이 지난 6월 13일 제주도 의회를 통과했다. 제주도교육청은 이 조례안이 통과되면 일부 학교에 식재된 가이즈카향나무를 베어내겠다고 했으니 이미 진행됐거나 진행되고 있을 터다. 향나무를 교목(校木)으로 지정한 제주도 내 초·중·고등학교는 스물한 곳이다. 교정의 수많은 향나무들이 모조리 잘려나갈 판이다.

이에 대해 “일제강점기의 가이즈카향나무의 실체”란 조사 논문(김종원·이정아)은 이런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향나무는 예전부터 사찰 등에 식재해왔고, 대표적인 민족 식물자원이다. 가이즈카향나무는 그런 향나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생겨난 조경수 상품일 뿐 식물계통분류학적으로 향나무 그 자체일 뿐이다. 또 현존하는 대구 달성의 가이즈카향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순종과 이토가 기념식수한 나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기념식수에 관한 기록에 나무 종류에 대한 정보는 일체 없으며, 이미 1930년에 기념 식수했다는 나무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기록도 있다.’

지금 일제 잔재의 수목으로 지명하여 제거했거나 제거하려는 학교 교정의 향나무들은 엉뚱한 누명을 쓰고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만일 이 논문의 주장처럼 대상 수종들이 제거된 후 반일 감정의 발로에 의한 엉터리 누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또 다른 사회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보다 이성적이고 신중한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가 나무나 꽃을 좋아하는 것은 국적과 무관하다. 일일이 국적을 따지며 시시비비를 가린다면 아마 우리 주위에 좋아하지 말아야 할 나무나 꽃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가 좋아했던 수많은 나무나 꽃들 중에는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귀화식물이 상당수다. 아카시아, 나팔꽃, 달맞이꽃, 부레옥잠, 개망초, 메밀… 등 너무도 친숙한 것들이다. 그것들이 이곳에 탈 없이 정착하여 잘 자라니 우리의 꽃이 되고, 나무가 되었다. 그런데도 특정 사건이나 역사에 연결시키며 국적 시비를 벌이는 어이없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일제 잔재의 논리로 제거하려면 향나무보다는 삼나무가 그 타당성에 좀 더 가깝다. 향나무의 원산지는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 등 여럿인 반면 삼나무는 오직 일본만이 그 원산지다. 또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제주 일원에 방풍림으로 심어졌다. 도로 건설과정에서 삼나무를 베어내려 하자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며 반대하더니 향나무를 베어내겠다는 제주도교육청의 방침에는 아무런 반대의 소리도 없다. 찬반이 엇갈리는 이런 코미디 같은 현실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감정적인 대응이나 물리적인 식민지 잔재 청산으로 일본을 앞설 수는 없다. 교가나 갈아치우고, 향나무나 베어낸다고 극일이 된다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상대를 원망하고 배척만을 일삼는 건 패배주의의 발로일 뿐이다. 과거 역사나 뒤적이며 편 가르기나 하고, 나와 우리 편의 주장이나 생각만이 옳다는 건 독선적인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패배주의나 독선적인 편협한 리더십으로는 결코 저들을 앞설 수 없다. 사회운동은 차치하더라도 정치 행위나 관치 행위는 포용적, 미래지향적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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