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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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얼마 전, 한 여배우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단아한 이미지로 연기도 잘하고 남모르게 선행도 꾸준히 해 온 분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는데 무슨 사연일까.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살면서 남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하지만 공연하러 간 임지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국가 중 2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중 우울증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데 여배우 역시 우울증이었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증이란 마음에서 육체까지의 기능이 저하된 상태라고 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음식이나 물, 공기 같은 것들이 신체에 꼭 필요한 물질이라면, 심리적으로 필요한 것은 소속감, 삶의 의미,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한다. 하지만 늘 그런 필요들이 충족되지는 못한다. 아픈 몸이 낫지 않아 지병이 되거나 하는 일이 잘 안된다거나, 좋은 관계가 소원해지면 우울증과 불안증을 키우게 된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보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 ‘소확행’이 나온다. 거기에서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돌돌 만 속옷을 서랍 안에 반듯하게 넣어 놓고 바라보는 것, 산뜻한 냄새가 나는 하얀 셔츠를 머리부터 뒤집어쓸 때의 느낌들, 이런 소소한 것들이 행복을 가져온다고 했다.

큰 수술을 받은 환자가 산소 호흡기를 매달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눈도 뜨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며칠이고 잠만 잔다. 바라보는 가족들은 애가 탄다. 언제쯤 깨어날까. 언제면 말을 할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멈추어 버린 것 같은 시간 속에서, 갑자기 환자가 손을 움직인다면 어떻겠는가. 행복은 작은 손끝에 달려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행복은 혼자오지 않는다.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 바람이 있다는 걸 느끼고, 산에 오르다 숨이 차야 공기가 있다는 걸 안다. 아무리 뜨거운 아스팔트라도 깨진 틈 사이로 잡초가 올라오고,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행복은 틈틈이 찾아온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다. 큰 행복을 기다리느라 순간순간의 작은 즐거움을 놓치는 일이 많다. 성공하면 행복해질 거라 믿는다. 하지만 행복은 성공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먼저 자세를 갖추고 습관을 키워야 한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마음. 좋은 감정과 긍정적 마음을 갖는 자세. 그런 좋은 습관들이야말로 자신에게 투자하는 소중한 행복 통장이 아닌가.

톨스토이는 말했다. “열렬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자만이 극도의 슬픔을 느낄 수 있고 열렬히 사랑했기에 슬픔을 견디고 치유할 수 있다.” 인생의 성공을 예견하는 기준은 풍족함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사랑하고 사랑 받았던 경험이라는 것이다.

살면서 말할 수 없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온다 해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사랑이다. 우리 사회엔 아직 우울증에 관한 좋지 않은 편견과 따가운 시선이 있는 것 같다. 환자에 대한 잘못 된 인식으로 인해 그들의 수치심은 증폭되고 치료시기를 놓친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길 원한다. 사회나 가족의 좀 더 따뜻한 보살핌으로 우리 함께 ‘소확행’을 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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