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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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얼마 전 저녁 늦은 시간, KBS1 TV에서 ‘전국이장회의’라는 토크쇼를 방영한 바가 있었다. 주제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가? 나지 않는가?>였다. 그날 참석한 대다수의 패널들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맺었다. 따라서 그들은 정부를 향해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를 줄이는 정부 시책을 촉구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토론 내용 중에는 “요즘 도시와 농촌 간의 사교육비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격차가 심하고 대입생들의 진로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대도시의 경우 과외 교습비가 수십 수백을 넘어 수천 수억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공정한 사회가 이루어지겠는가?” 라는 말도 나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얘기였다.

물론 자본주의사회는 ‘무한경쟁’을 패러다임으로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무한경쟁의 사회질서는 그 장점보다 단점의 폐단이 훨씬 많다. 돈 많은 부모를 가진 자녀들은 100m 경주를 할 때 돈 없이 가난한 자녀들보다 마치 50m 전방에서 뛰는 모양새이다. 결승점에 누가 먼저 도달할지 불 보듯 뻔한 이치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SKY대학을 선호하고 사(士)자 직업을 으뜸의 직업군으로 엄지척(?)하는 한 우리 사회의 공정과 행복지수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무엇보다 국가의 교육정책이 우선해야겠지만 우리 국민들의 의식변화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 인생 삶의 목표는 최고 학부를 나오고 돈을 많이 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다는 삶의 철학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 이것을 가정교육과 공교육에서 철저히 가르치고 정부나 대기업에서도 인재를 등용할 때 도덕성을 높이 평가하는 제도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자도 ‘학이지시습(學而之時習)’을 석가도 ‘자비중도(慈悲中道)’를 예수도 ‘박애실천(博愛實踐)’을 노자도 도덕궁행(道德躬行)을 주창한 것은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목표를 이미 깨우쳐 주신 것이 아닌가 한다. 반두라(Albert Bandura)의 학습이론처럼 동물이든 인간이든 모든 문화는 ‘학습(學習)’에 의해서 변화되고 단련이 된다. 과거 우리가 경험했던 농촌부흥의 ‘새마을운동’처럼 우리 사회에 변화 혁신의 ‘새마음운동’이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개인적으로는 마음심(心)자에 가로 놓인 3개의 점, 곧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탐진치·貪瞋癡)을 관리하여 마음을 향상시키고 사회적으로는 무법(無法)과 무질서(無秩序), 무규범(無規範)을 통제하여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도록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꽤 오랜 동안 ‘끽다거(喫茶去)’모임과 대학의 평생교육, 그리고 각급기관과 일반사회단체 초청특강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용심론(用心論)이라는 인문학강좌를 계속해 오고 있는데 많은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인문학의 골자는 문학(文學)과 역사(歷史)와 철학(哲學), 곧 문사철(文史哲)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인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침의 하나이다. 인문학 강의는 사람의 마음을 미소 짓게 하는 힘이 있다. 공자도 석가도 예수도 모두 훌륭한 인문학 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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