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 제주신보
  • 승인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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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남이 가니 따라서 간다.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살고자 한다. 그것이 마음 편하게 즐기면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

마음을 닦는다고 한다. 마음은 하나인가? 여러 개인가? 마음을 닦는다면, 닦아야 할 대상이 되는 마음이 있고, 그것을 닦고자 하는 의지의 마음도 있다. 여기에 마음을 닦는다면서 무작정 닦을 수는 없으니 닦고자 목표로 세운 마음이 있고, 또 단계마다 닦여진 마음 등이 있을 것이니, 마음은 참으로 많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인 줄 알고, 목표 없이 왜 사는 줄도 모르고 그냥 산다. 그것은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니다. 막사는 것일 뿐이다.

배우는 자는 배우기 때문에 학생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경쟁의 현장으로 내몰리는 것이 안쓰러워, 그저 평등하게 막살도록 해주자고 한다. 그것이 행복한 길이란다.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기 때문에 선생이다. 그러나 이름만 얻고, 갖가지 이유를 들어 가르치지 않으면 그도 선생일까?

“대학원생이면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라는 핑계를 대며 수시로 휴강하고, 수업을 하는 날조차도 학교 행정 따위나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는 것이라고는 학부 수준의 얄팍한 지식이 전부인 사람이며, 학부 수준을 훌쩍 넘어버린 대학원생은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질문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질문하는 학생을 미워한다.

그러나 오직 자기만이 알 수 있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관심을 받고자 구걸하지도 않고, 우매한 것을 깨닫고, 배우고자 하는 학생을 방치하지도 않는다.

아는 것이 많고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매사에 신중하고 행동이 가볍지 않다. 반면 아는 것도 없으면서 어쩌다 자기 능력에 맞지 않는 지위에 올라버린 사람은, 꾸며서 보여주는 것에 온 마음을 쏟는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가볍게 촐싹대며, 핑계가 많고 선동적이다.

산을 오르는데 남들이 오르내리던 잘 닦인 길로 가고자 하는 사람은, 그저 앞 사람의 발자국을 보고 따라 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남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로 오르고자 한다면, 먼저 정상을 쳐다보며 목표를 정한 다음 걷는다. 없는 길을 개척하며 걸어야 하니, 발아래만 보며 걷게 되고, 오직 발아래만 보고 걷다보면, 얼마 되지 않아 목표를 잃기 마련이다. 그때는 다시 고개를 들어 정상을 재확인하고, 혹시라도 잘못 가고 있다면, 바르게 고쳐 걸어야 비로소 정상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인생도 같다. 여태껏 남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수시로 자신을 돌아보며 목표했던 바른 곳을 확인하며 걸어야 한다.

한 사회를 짊어지고 가는 선장이, 목표도 없이,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자기 패거리들과 함께 그저 여행하듯 즐기며 유쾌하게 세월을 보낸다면, 그를 따르는 뭇 사람들의 신세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구한말 고종 대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집권했다면, 이씨왕조의 사람들이,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저들에게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고, 오늘날까지 저들에게 무역보복을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을까?

한 사람이 바뀌면 그를 추종하는 뭇사람이 바뀌고 그들에 의해 사회가 바뀐다. 국가나 학교, 한 단체 등이 쇠퇴하는 것은, 한 사람의 무능한 지도자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어른은 있는가? 사회의 곳곳을 돌아보며 한숨짓는다. 저들을 믿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