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에서 가장 뛰어난 곳…옛 군사·문화의 요충지
탐라에서 가장 뛰어난 곳…옛 군사·문화의 요충지
  • 제주신보
  • 승인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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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8년 목사 신숙청이 창건…일제시대 견뎌내고 원형 유지
1963년 국가보물 32호 지정…지방문화재 돌하르방 다수 보존
‘탐라형승’ 등 편액 여러 개…이재수의 난·4·3 등 격변기 현장
1914년(일제시대) 관덕정 앞 거리에서 오일장이 열리던 풍경. 사진=제주100년 사진집
1914년(일제시대) 관덕정 앞 거리에서 오일장이 열리던 풍경. 사진=제주100년 사진집

제주에 현존하는 고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관덕정(觀德亭)은 조선시대 제주목 병사들의 무예 훈련장으로, 1963년 국가보물 제32호로 지정됐다.

1448년 목사 신숙청이 창건한 관덕정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목관아 건물 중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형태로 수차례 중창과 중건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덕(觀德)덕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예기(禮記)의 사의(射儀)편에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射者 所以觀盛德也)에서 유래한다.

관덕정이란 편액을 쓴 이는 세종의 3남인 안평대군 또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라 전해진다.

관덕정 앞뒤에는 지방문화재 민속자료 제2호인 돌하르방 4기가 원래 자리를 잃고 흩어져 있다.

1754년 김몽규 목사 시절 제작된 돌하르방은 성문 앞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수호신의 고매한 위치에서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유랑과 방랑을 거듭하고 있는 딱한 신세가 되어 있다.

관덕정 바로 뒤뜰에는 사라진 월대를 대치한 듯한 오래되어 글씨가 꽤나 마모된 상태인 宣德臺(선덕대)가 처연하게 서 있다.

선덕대 뒤에는 지방문화재인 돌하르방 2기와 최근에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돌하르방 2기도 서 있다.

지방문화재라는 어떠한 표지석도 없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화전 안내물인 모조품 돌하르방 모형과 함께 서있는 진품 돌하르방의 신세가 서글플 따름이다.

그 옆에는 주변에 산재했던 석조물들을 모아 부조형태로 쌓은 기념물도 함께 서 있다.

후손들의 역사문화 의식을 담은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관덕정 외부로 돌렸던 시선을 건물 내부로도 돌리면 우리는 그곳에서 자랑스러운 역사문화와 만나기도 한다.

 

영의정 이산해가 쓴 관덕정 편액.
영의정 이산해가 쓴 관덕정 편액.

관덕정 내부의 편액 중 하나인 耽羅形勝(탐라형승)이란 커다란 글씨는 제주목사(1778~1781)였던 김영수의 글씨라 전해진다.

뛰어난 지세나 풍경을 뜻하는 형승에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를 뜻하는 의미도 실려있다.

湖南第一亭(호남제일정)이라 쓴 편액은 1881-1883년 사이 제주목사였던 박선양의 글씨라 전한다.

관덕정은 제주를 포함한 호남지역을 통틀어 가장 웅장한 건물이라는 뜻으로 제액한 것이다.

또한 관덕정 광장에 서면 목관아의 외대문과 입구에 서 있는 守令以下皆下馬(수령이하개하마)라는 하마비석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외대문 2층에는 1834(순조34) 한응호 목사 때 묘련사라는 절에서 가져온 종이 있었으나, 이의식 목사 때 종을 부수고 화로를 만들었다가, 바로 다음 장인식 목사 때 미황사(美黃寺)에서 사들인 큰 종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사라졌다 한다.

또한 건물 2층 편액된 글에서, 바다를 지키는 망루라는 의미인 鎭海樓(진해루)와 조선 8도에 1명씩 파견된 종2품인 관찰사(감사)의 관아라는 뜻인 耽羅布政司(탐라포정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과거로의 여행일 것이다.

제주목사도 여타 지방의 목사보다는 품개가 높은 정3품 당상관으로서 제주지역의 관찰사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제주목관아에도 耽羅布政司란 편액이 걸릴 수 있었다 한다.

관덕정 광장이 지켜본 역사적 비극 중에는 1901년의 이재수 민란과 4·3의 직접적인 도화선인 1947년 삼일절 사건이 있다.

4·3의 장두 이덕구의 주검이 전시된 곳 또한 관덕정 광장이었다.

제주역사문화를 기록함은 제주의 정체성을 더욱 풍성하게 경작하는 옥토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요사이 목관아지 주변은 제주사람들 못지않게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주로 찾는 명소가 되고 있는 듯하다.

그들도 우리의 역사문화 현장방문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계기로 삼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