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 사람들
치앙라이 사람들
  • 제주신보
  • 승인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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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치앙라이에 갔다. 갑자기 불어난 물로 동굴에 갇혀버린 아이들에 대한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성지순례 계획에 따라 출국 일자는 다가오고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시각각으로 들리는 치앙라이 사태에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푸미폰 국왕의 서거 이후 6개월쯤 되는 날이었다. 13명의 축구 선수는 탐루앙 동굴에 생일축하 파티 차 들어갔다가 불어난 물로 갇히고 말았다.

축구코치 엘까퐁은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의 미얀마 태생이었다. 열 살 때, 마을에 전염병이 번져 형과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다. 엘까퐁은 생사의 고뇌도 있었지만 불교 사원에 일찍 출가한 셈이다. 연로하신 할머니를 뵙고 싶어지자 환속하였다. 무국적자로 태국에서 축구코치를 하였다. 실지 그곳은 육상통로는 없고 세 개의 나라를 배만 타면 수시로 오가며 출퇴근이 가능하였다.

동굴에 갇히자 엘까퐁은 오래 버틸 수 있게 음식과 물을 분배하였다. 스트레스는 줄이고 공황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명상을 가르쳤다. 아이들 12명을 끌어안고 명상하는 사진을 sns에 공유 하였다. 평온을 유지하며 긍정의 힘을 유도한 엘까퐁은 하늘에서 보냈을까.

치앙라이 안내원에 따르면 4·4·5명이 구조되어 445 숫자가 인기이며 7월 전원구출까지 17일간 717 숫자도 요행수에 많이 응용한다 했다. 무사고로 전원구출하자 국민의 청원을 받아들인 정부에서는 엘까퐁의 태국 국적을 인정해 주었다.

치앙라이에는 골든트라이앵글이 인접한 곳에 카렌족과 아카족이 사는 마을이 있다. 미얀마에서 건너온 난민으로 산악지대 오지 깊숙이 숨어 있다. 골든트라이앵글은 마약왕 쿤사가 주 무대로 활동한 지역이다. 대대적으로 미국과 태국의 군대가 20여 년 전에 소탕을 펼친 후 토벌 작전이 승리하여 이제 양귀비는 재배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아편 통제는 세계 경제 제재 대상에 해당하는 구역이다. 사람이나 문명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태국에서는 이곳에 3국 국경이 접한 삼각지대의 이들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시민권이 없는 무국적자이니 거주지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관광객은 이곳에 비싼 입장료를 내고 입성한다. 관광객들이 찾는 여행지가 되었다. 입장료는 이 부족의 생계유지 수단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카렌족은 30이나 되는 놋쇠 링을 손목과 목에 차고 있다. 아이들은 무릎과 발목에도 찬다. 바로 누울 수 없고 옆으로 누워 잔다. 발목에 링을 빼면 뼈가 부서진다고 한다. 대여섯 살의 여자아이도 목에 링을 찼다. 애처롭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예쁘다.

이곳에는 삼 대가 모여 살며 여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수공예 베틀에 앉아 철거덕거리며 모직물을 짜고 있다. 귀는 놋쇠 귀고리 무게 때문인지 콧구멍 서너 배나 되게 구멍 난 채로 늘어졌다.

사진을 찍는 자체가 미안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롱 넥 부족이라 한다. 카렌족의 목에는 호랑이 등 맹수들이 목을 물어버리는 습성 때문에 처음에는 보호 차원에서 링을 착용하게 하였다.

맞은편에는 검은 옷차림의 아카족 부족이 은 장신구로 잔뜩 치레하고 수를 놓고 있다. 머리에 체크무늬 장식을 화려하게 틀어 올려 부족의 멋을 과시한다. 막사 안에서 물병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에 십자수를 놓고 있다. 여인은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미소 짓는다. 안쓰러워 소품을 샀다. 어찌 보면 카렌족과 아카족의 보존을 위한 것 같지만, 학교 진학 혜택은 없이 문맹에 가깝다.

동행한 회장님과 나는 학용품을 마련하여 큰 트렁크에 반이나 담고 가기를 잘하였다. 아이들을 모이게 하니 10명이 넘었다. 줄을 서게 하여 스케치북과 크레파스 색연필 싸인 펜을 나누어 주었다. 아무런 글이라도 그리면 상형 문자가 될 것이 아닌가. 두세 개씩 들고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나 자신이 기분 좋다. 어느 막사에는 아기가 있어서 가방 속의 남은 학용품을 통째로 건넸다. 물물거래도 할 줄 모른다. 무국적자의 슬픔을 알기나 할까.

골든트라이앵글 선착장에 섰다. 커다란 부처님은 오늘의 무사고와 미래를 향한 바람까지 품어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