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섬을 등에 진 채 돌을 치우며 밭을 갈던 사람들
돌담·밭담이 이제는 축제와 걷기여행지가 돼 상처를 치유
돌 밭 위의 순례자, 그 이름은 제주인
길바닥에 온 몸을 내던지며 신을 만나는 이들- 지상 위 가장 느리고 간절한 걸음을 이어가는 이들, 바로 순례자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이름의 순례자가 있다. 한평생 섬을 등에 지고 살아 온 제주 사람들. 온 종일 흙먼지 뒤집어쓰고 돌을 치우며 밭을 갈았다. 그들의 삶은 거칠고 팍팍했으며 가난하고 외로웠다. 고통이 커도 속죄하며 길 떠나는 순례자들처럼, 제주 사람들도 액운을 막고 가족의 복을 기원하며 돌밭 위의 삶에 순응했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고, 도망쳤다가도 돌아올 수밖에 없는, ‘출륙 금지령으로 눌러앉은 삶’이었고, 영혼과 육신이 ‘섬에 가두어진 삶’이었다. 김정희와 시놀이팀의 시낭송 ‘흑룡만리’가 섬을 울린다.
낮고 휘고, 검고 긴 제주 돌담. 섬에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흑룡을 닮았다 하여, 그 길이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길다 하여, 제주에서는 돌담을 ‘흑룡만리’라 부른다. 한 줄로 위태롭게 서 있지만,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강한 태풍에 콘크리트 벽은 무너져도 제주 돌담은 끄떡도 않는다. 그것은 기공이 많은 현무암 그 자체의 비결도 있지만, 돌과 돌을 얼기설기 쌓아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만든 제주 사람들의 지혜 덕이 크다. 그렇게 쌓아올린 돌담은 바람 많은 섬에서 제주의 농사를 도왔고 삶을 버티게 해줬다. 돌밭 위의 고통은 환희로, 좌절은 희망으로 승화시킨, 무용가 박소연님의 춤사위다.
제주의 자연과 문화, 역사는 물론 삶의 애환까지 스며있는 제주 돌담. 그러나 돌담이 서 있던 해안가마다 크고 화려한 휴양펜션이 들어서고, 외지인들이 사들인 땅엔 관리되지 않은 밭 옆 황량한 표정으로 남아있는 돌담도 많다. 세월에 밀려 사라지고 잊혀지는 제주 돌담의 슬픈 현실. 다행인 것은 제주도가 사유지들을 사들여 개발로부터 밭담을 지켜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람난장이 서 있는 이곳, 월정리 밭담길이다.
다시 희망이다. 돌담은 언제나 끊어지다 이어지길 반복하며 섬 땅을 누벼 왔다. 이제 더 이상 사라지고, 기억 속에 묻혀있기를 거부하며, ‘제주밭담축제’와 ‘밭담길 걷기여행’으로 새롭게 태어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세상에 하나 뿐인 돌 길 위의 순례지가 되어 상처 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할 지도 모른다. 그 아름다운 날을 꿈꾸며, 음악을 만끽한다. 김민경님의 아코디언 연주 ‘즐거운 나의 집’, 오현석님의 리코더 연주 ‘아름다운 나라(신문희 곡)’. 곡의 제목처럼 제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한 오늘이다.
※13일 열리는 바람난장은 제주시 1100로 어리목광장에서 진행됩니다. 도민 누구나 바람난장 공연에 참여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