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나라
만만한 나라
  • 제주신보
  • 승인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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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우리 민족사에 수난이 닥친 건 거의 다 중국과 일본에 의해서다.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 실린 임진왜란의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굶주림에 역병까지 겹쳐 살아남은 백성이 백 명 중 한 명꼴에 그쳤고, 부모 자식과 부부가 서로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지난 일을 반성하고 미래를 대비하자는 징비록의 교훈을 잊고 30년도 안돼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의 치욕을 연달아 겪었다. 백성을 어육으로 만들고 수만명이 노예로 잡혀갔다고 인조실록에 전한다.

구한말엔 열강들이 한반도를 마당 삼아 땅뺏기 싸움을 벌이며 나라를 도륙했다. 급기야 조선후기 200년을 이어온 당쟁은 망국으로 귀결됐다. 늘 바깥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르고 우리끼리 싸우다가 당하곤 했다.

▲지금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밖을 보면 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외교 및 경제 상황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마당이다. 안으로는 정치적 내홍이 끊이지 않는다.

외교만 하더라도 미국에 의심받고, 중국과 북한에 무시당하고, 일본한테도 아픈 곳을 얻어맞았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우리의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라는 경제보복 카드를 빼들었다. 한국 무시와 패싱은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중국은 베이징에 설치된 삼성과 현대자동차 광고판 120여 개를 예고 없이 뜯어내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특히 우리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는 북한조차 일개 국장이 나서서 대통령을 거칠게 비난하는 지경이고, 혈맹 미국에서도 한국패싱 현상이 잦아지는 게 현실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정부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요즘 한국의 외교나 경제가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쇠락하고 있다는 경고와 맥을 같이 한다.

한국을 만만한 국가로 보는 주변국의 무례는 우리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복잡한 국제문제에서 보편적 대의를 따르기보다 눈치로 일관하는 모습을 자주 목도한다. 힘과 실력이 우선하는 국제관계에서 얕은 이익에 집착하는 셈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얘기다.

근래만 해도 과오는 정치·외교가 저질러놓고 그 대가는 기업들이 치르고 있다. 그로 볼 때 한국은 과연 국가 간 전략전쟁에 나설 대응책을 갖고 있는가 하는 화두를 떠올리게 한다. 큰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