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보양
마음의 보양
  • 제주신보
  • 승인 20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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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순 수필가

언제 적인지 기억은 또렷하지 않다. 어느 방송에서 “주부님, 집안에서 청소 한 번 덜하고 책을 읽으십시오.” 라는 멘트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그 여운이 쉬 잦아들지 않는다.

결혼하기 전에는 서점에 드나들며 책 골라 읽는 재미를 즐겼다.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가리지 않고 뒤적이다 맘에 들면 집으로 사들고 오기도 했다.

결혼 후에는 이런저런 핑계로 책과 멀어졌다. 취미 생활에다 가사에 육아까지 껴안고 살다보니 독서는 자연스레 일상에서 지워져 버렸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자 여유가 생겼다. 내 안을 들여다보는 기회도 잦아졌다.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옳은가?’ 내 삶에 회의도 일었다. 안 되겠다싶어 다시 책방을 기웃거렸다. 삶의 해답을 책에서 찾아보려는 나름의 자신지책(資身之策)이었다. 방에 책꽂이를 들여놓고는 오가며 책을 사들고 와서 꽂아놓는 재미도 붙였다. 남들은 읽지 않을 책도 장식용으로 사서 진열해 놓는데 읽기 위한 책을 구입하는 건 마음의 보양이라고 자신을 세뇌하며.

서점에 들어서면 책 냄새가 좋다.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기분 좋은 향이다. 배고픈 사람이 요리 냄새에 끌려 식당 앞을 지나치지 못하듯 새로 나온 신간 또한 책장이라도 넘겨봐야 내 안의 호기심을 어느 정도 다스린다. 우연찮게 만나는 작가의 글을 읽다 글 매력에 빠지기도 한다. 그들의 글재주에 시샘이 일기도 한다. 작가의 삶까지 엿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매 서운한 마음도 생긴다. 요즘 여자 애들의 인기 연예인에 대한 열광만은 못해도 작가에 대한 나의 관심도 만만찮다. 표피적인 끌림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생각이나 사상에 매료된다. 그럴수록 내 독서가 특정 작가에 편향되는 경향이 있긴 하다. 문학 장르 역시 수필이나 평론에 유독 눈독을 들이게 된다. 맘에 드는 사람과 친해지듯 수필을 쓰기 때문에 기우는 현상이라 치부해 버린다. 그렇다고 시나 소설을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광고의 꼬드김에 끌려 선전하는 시나 소설을 읽지 않으면 시대의 낙오자가 될 것 같은 조바심으로 책장을 넘기기도 한다. 함축된 시어 속에 내재된 의미를 내 나름으로 정의하다보면 나도 시인이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소설 내용이 아무리 가상이라지만 그에 빠져들면 식음조차도 독서의 쾌감으로 대신한다. 그래도 나는 수필의 글맛에 더 끌린다. 작가의 지성과 경험으로 수놓아진 한 편의 수필을 읽다보면 서정의 감미와 지성의 번득임에 녹아있는 그들의 삶의 여운과 인생의 향기를 맛보게 된다.

오늘의 삶은 경쟁을 넘어 살벌하기까지 하다. 한가와 평안을 즐기며 독서하는 게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그렇지만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현실의 삶이 각박할수록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내면을 보듬지 않으면 외형적인 풍요 또한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책은 지식이나 교양 이전에 시공을 넘나들며 꿈과 낭만을 맛보게 해 주는 마술 같은 존재다. 감히 대면할 수 없는 지성들과 만나고 그들의 삶을 엿보게 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삶의 지혜도 얻게 된다. 올여름에는 집안에서 책과 벗하며 허기진 마음의 보양에 힘써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