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을 뒤적거리는 이유
집 안을 뒤적거리는 이유
  • 제주신보
  • 승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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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진 수필가

골목 어귀에서 엿장수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집 안을 둘러보며 엿 바꿔 먹을 수 있는 거리를 찾았다. 뒤란에 빈병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그마저 없으면, 부엌을 살피고 고팡 안 항아리들 틈새에 손을 넣어 보고, 마지막엔 혹시나 구경이라도 하고 있으면, 가위로 내리치다 남은 부스러기라도 없을까 하여, 간절함으로 밖으로 향했다. 늘 달달함을 입에 넣고 싶었던 아잇적이다.

요즘 그렇게 다니는 엿장수도 없는데 그때의 심정으로 이 방 저 방을 들추고 있다. 지역 내에서 중고 물품을 직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모바일 앱에 꽂혀서다. 스마트폰을 쥐면 습관처럼 그곳으로 들어가 여러 사람들이 내놓은 가지각색의 물건들을 본다. 더 큰 것을 사기 위해, 사서 보니 다른 것과 어울리지 않아, 이사를 가게 됐거나 급전이 필요하다는 둥 다양한 사연들을 담고 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새로운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지금, 사람들의 욕망은 더 크고 갓 출시된 제품을 주시한다. 클릭 몇 번으로 빠른 배송을 자랑하며 상품이 도착하고, 어제의 물건은 중고 시장 품 안으로 들어간다. 쉼 없이 올라오는 상품들에 눈길을 둔다. 훑어보기 벅찰 지경이다.

어느 구역이든 그 나름의 세계가 있다. ‘찍힘이 있어요.’, ‘생활 흠집이 조금 있네요.’, ‘딱 한 번 사용했어요.’, ‘넣었던 박스는 없어요.’, ‘예민한 분 사절입니다.’ 등 이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문구에 피식 웃음이 난다. 혹여 기대가 클까 봐 과대광고가 아닌 솔직함으로 어필하고 있는 모양이다.

예전에 아나바다 운동이 이러지 않았나 싶다. IMF 외환위기 때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웃끼리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며 경제 위기를 견뎌 냈다. 벼룩시장이나 동네 장터 등에서만 이루어지던 알뜰 시장이, IT(정보통신)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시대에 맞는 옷으로도 갈아입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중고 거래 앱은 온라인으로 되살아난 현대판 아나바다 운동이라고.

마침내 중고 시장에 올릴 물건을 찾았다. 휴대용 가스히터. 섣불리 사들인 만큼 후회도 빨랐다. 넓은 공간을 덥히기보다는 바로 곁에 두고 써야 하는 방한용품이라 한두 번 사용하다 그만두었다. 나에게는 필요 없지만 다른 이에게는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미쳤다.

누구나 알고 있듯 중고의 매력은 싸다는 거라 살 때의 반값으로 내놨더니 금세 줄이 섰다. 채팅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게 거래방법이었다. 주고받은 몇 마디가 전부인 짧은 만남이었지만 흐뭇한 미소가 덤으로 오갔다.

팍팍한 주머니 사정들 때문인지 이 공간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게 ‘무료 나눔’이 아닐까 한다. 부모님이 보내 주신 음식이 많아 나누고 싶다거나, 추억이 있어 버리기 아까워 드린다거나, 필요하다는 분 가져가라는 주는 이의 마음 씀씀이가 엿보인다. 언제나 경쟁이 치열하여 내 차례까지 오진 않지만, 우리 주변에 넉넉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흔흔하다.

그러고 보면 나눈다는 것은 내 안에서만 머물렀던 시선을 주변으로 확장하는, 사람 냄새나는 관계가 아닐는지. 어린 시절 담장 너머 오가던 소쿠리 안의 정처럼 따뜻함이 번져 와 더불어 사는 공동체임을 깨닫게 되는.

좋은 것을 보면 따라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나누기 위해 나는 다시 집 안을 구석구석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눔은 사람을 달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