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의 진면목을 맛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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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전 제주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아무데도 가지 않는 행위는 세상에 등을 돌리고, 집안에 틀어박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한 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고 더 깊이 사랑하려는 행위다.” (‘여행하지 않을 자유- 우리가 잃어버린 고요함을 찾아서’, 피코아이어 저).

아무대도 가지 않기의 개념은 내면이 들여다보일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니 단순하다. ‘()’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이야말로 가장 풍성한 감각을 이끌어낸다. 이렇게 살짝 느껴본 고요의 맛은 파격적이다. 이것은 평소 단순한 침묵에서 받았던 느낌과는 판이하다.

여행 진행 시에 오랜 시간 기다리는 과정이 있을 때 아무데도 가지 않기를 도입하면 그 여정에 묘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 ‘아무데도 가지 않기로여행을 떠나면 사랑에 빠진 것처럼 정신이 각성하고, 생기가 넘치고, . 이것이 바로 이 여행이 주는 더 심오한 축복이다.”고 했다.

올해 처음으로 아가판서스와 치자나무가 친구로 자리했다. 이들의 꽃 색깔과 모양이 판이한 것처럼 인간에게 접근법이 상이하다. 아가판서스는 들판을 마음껏 달리는 야생마, 치자나무꽃은 구중궁궐의 아씨 분위기를 품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을 한참 바라보면 무념무상에 빠진다.

우리의 생활공간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간소음과 환경소음은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다양한 질병을 유발시키고 있다. 아가판서스는 이 모든 고통을 지워버린다. 이것은 무념무상의 배를 타고 한 순간에 한라생태숲 숫모르숲길의 산딸나무꽃과 아왜나무꽃과 하나가 되도록 한다. 거기서 자연의 향기와 소리에 침잠한다.

아가판서스(agapanthus)는 그리스어 아가파(agapa, 사랑)와 안토스(anthos, )의 합성어로 사랑스러운 꽃이라는 뜻이다. 굵게 쭉뻗은 꽃대와 긴 타원형의 연푸른 꽃에 미소를 머금는다. 이것은 바라볼수록 다양한 매력을 표출한다. ‘아무데도 가지 않기로 여정을 즐기는 기분이다.

평소에 너나들이길은 필자에게 생각을 멈추게 하는 특별한 숲길로 다가온다. 이 숲길에 들어서면 욕망과 아집이 숲속에 용해되어버린다. 이 순간부터는 경쾌한 발걸음과 잔잔한 미소가 동반자로 다가온다. 그래서, 세상을 좀더 명료하게 바라보고 더 깊이 사랑할 것 같아진다.

치자나무와 자연스럽게 중첩되는 이 너나들이길에 일심(一心)으로 있는 순간은 주위가 포근해지고, 내가 자신을 잊은 그만큼 행복해짐을 알게 된다. 극락이란 것이 있다면, 다른 곳을 떠올리지 않게 만드는 바로 그곳이리라. ‘너나들이길이 극락을 잉태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에 바다의 색깔을 맛볼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극락의 진면목일 것 같다.

토머스 머튼은 자신이 녹아들 수 있는 공간을 찾은 후 나는 숲의 고요함과 백년해로하기로 결심했다. 온 세상의 달콤하고 어두운 따스함이 내 아내가 되어줄 것이다.”고 읊었다.

치자나무는 다양한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선인들은 술잔에 치자나무 꽃잎을 띄워 그윽한 향과 더불어 술을 마셨다. 열매로 물들인 쌀가루나 밀가루 등으로 파전이나 빈대떡을 부쳤다.

치자 색소는 중요한 천연식품 착색제로 사탕, 케이크, 음료 및 주류 등의 발색에 사용된다. 치자나무꽃의 정유는 여러 가지 향수와 화장품에 사용된다. 식물이 인간 삶의 형태에 미치는 영향이 심미적이며 운취있다.

한방에서는 진정제, 이뇨제로 주로 쓰고 있으며, 소염제로서 각종 염증이나 신열, 두통 등은 물론 위장병, 당뇨병, 황달, 임질, 불면증, 결막염 등에도 다른 약재와 함께 처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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