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 생활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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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춘강장애인근로센터 사무국장·수필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야기를 꺼내놓음은 나와 함께 호구의 생활을 버린 이가 더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발표되고도 수일 후였다. 언제나처럼 출근길에 ‘김현정의 뉴스 쇼’를 청취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일본의 행동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격앙된 앵커의 지적마다 맞장구를 치며 분노하던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응이 무엇인가?” 질문에 “민간에서의 불매운동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그 아침 나는 유니클로 옷을 입고 있었다.

나 자신을 친일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일부러 독립운동가의 기념관을 들러 험난하였던 그 길을 되짚어보며 일본의 만행에 분노하고, 서대문형무소는 쳐다만 봐도 가슴이 아파지는 평범한 한국인이다.

그러나 생활은 일본에 대한 인식이나 감정과 무관하였다. 건강상의 문제로 장거리 여행이 어려운 탓에 해외여행은 언제나 일본이었다. 그렇다고 일본 여행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가을 홋카이도 지진 때는 대피소에서 묵었고, 재작년 오사카 여행에서는 고추냉이 초밥을 먹기도 했으니.

그때는 아들과 둘이 떠나 자유여행이었다. 둘째 날 교토에 있는 대형쇼핑몰에서 회전초밥을 맛있게 먹은 우리는 다음 날, 오사카에서 현지인들이 찾는 조금은 비싼 초밥 식당을 찾아갔다. 손님들의 연령대가 제법 되어 보이는 깔끔한 분위기의 식당은 맛을 기대하게 했다. 기왕이면 주방장 앞쪽에서 여러 가지 맛보자며 호기롭게 앉았지만 주문한 초밥을 거의 다 남겨 놓고 일어섰다. 귀국 후 방송을 보고서야 우리가 혐한 주방장이 만들어 준 고추냉이 초밥을 먹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오카야마 여행에서는 역무원의 대놓고 보이는 혐한의 몸짓에 걸음을 서둘기도 했고, 도쿄에서는 혐한 시위대를 피해 돌아간 적도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 여행을 계속하였으니 내가 배짱이 좋은 것인지, 속이 없었던 것인지.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수지는 2010년부터 올해 5월 말까지 누적 적자가 2415억1613만 달러로 1년 평균 249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 수치를 일본 수교가 이뤄진 1964년 이후로 계산하면 누계적자는 약 708조 원에 이른다.

또 다른 아침 출근길, 일본 기자의 “한국경제 성장은 일본 덕분이다.”라는 망언에 나의 생활을 반성했다. “일본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그에게 되묻는다. 동네에 대형마트가 있어 이용하면 마트 주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가?

편하다는 이유로 지역 상권 생각지 않고 대형마트 드나들었듯이, 그저 이웃에 있어서, 그리 나쁜 제품은 아니어서 수없이 쓰고 혹은 다녀왔기에 일본이 나를 호구로 알았구나. 내가 대형마트에 드나들 때마다 직원들이 친절하게 대하듯이, 일본도 나에게 고마움을 표했어야 했다. 그것이 옳다.

더는 호구가 될 수 없어 유니클로 쇼핑몰 장바구니를 비웠다. 속이 개운했다. 절대라 할 수는 없지만,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신경 쓰고 골라낼 것이다. 무심코 일본제품을 쓰는 일이 없도록 조금은 오래도록 마음을 써볼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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