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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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BHA 국제학교 이사, 시인/수필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주로 도서관에 갑니다. 쾌적한 환경에 신문이 10여종 항상 비치되어 있고, 또 수많은 월간지도 마음껏 읽을 수 있습니다. 책도 맘껏 빌려 볼 수 있으니까 시간 보내기에 이만한 곳 찾기도 힘들지요.” 퇴직한 후배 교장선생님께 안부를 물으니 도서관 사랑에 푹 빠져있다고 전한다.

거의 30년 전에 미국 에머스트 대학에서 연수 받을 때 일이다. 과제와 토의 자료를 구하느라 대학도서관을 들락거렸었다. 그런데 백발의 꾸부정한 한 어르신이 거의 매일 도서관에서 신문도 보고 책도 열심히 살피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한번은 대화할 기회가 있어서 혹시 이 대학 교수님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은 자기는 전직 고등학교 지리 교사였는데 퇴직 후에는 매일 이 도서관에 나와 신문도 보고 책도 보면서 소일한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한국의 실정과 비교하여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우리 주변에 퇴직 후 도서관으로 출퇴근하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부럽고 훌륭한 선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 있는 한 친구는 서너 달에 한 번씩 습작 소설을 보내준다. 전직 서울시 고위직 공무원이었던 친구는 40여 년간 매일 일기를 쓸 정도로 성실히 꾸준히 살아가는 분이다. 전에 집근처 도서관 독서토론반에 들어가서 일주일에 두 권 가량 정해진 독서를 하고 치열한 토론을 한다는 소식도 들었었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시행하는 소설 강좌에 나가 몇 년 째 소설 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등단하고도 남을 능력과 기능을 이미 갖추고 있어 보이는데 아직도 멀었다며 계속 정진 중이다.

요즘 도서관은 도서 대출의 기본 업무를 넘어선지 오래다. 도서관이 지역 문화 예술의 구심점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영상으로 만나는 예술 공연(무료 영화), 인문학 교양 강좌, 연극 공연, 어문학 강좌, 이야기 활동 전문가 양성, 백일장, 도서관 대학, 함께 읽는 고전, 시쓰기, 소설 쓰기, 자서전 쓰기, 독서 토론회 등 너무도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건강을 잘 다스리는 방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제주도민들은 360여개의 오름과 수많은 올렛길과 문화 유산, 자연 유산, 관광자원이 산재해 있으니 복받은 천혜의 섬에 사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듯하다. 그래서 평일이든 주말이든 산행을 하는 사람과 무리로 넘쳐난다.

그러나 노년을 지혜롭게 보낸다는 것은 반드시 육신의 건강을 뜻하지만은 아닐 것이다. 정신적 소양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발전 시켜나가는 것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알고 보면 노년이야말로 모든 가치와 지식과 경험이 집약된 결실의 시기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중에서 황혼의 반란부분을 보면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또 아프리카에서는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는 속담도 있다. 노인 한분 한 분은 하나의 도서관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도서관이다. 오랜 인생의 경험을 통해, 노인들이 갖게 되는 경륜과 지혜는 도서관과 비할 만큼 소중한 보물이다. 노인의 향기와 노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그 분들의 경험을 잘 이어받아 귀히 존중하는 사회여야 미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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