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역린
민심의 역린
  • 제주신보
  • 승인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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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한비자의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역린(逆鱗)’은 용의 턱 밑에 거꾸로 난 비늘을 말한다. 용이란 동물은 길들이면 탈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역린을 건드리면 반드시 해를 입는다. 아무리 고분고분하고 무던한 용이라고 해도 그 등 위에 올라타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다가가야 한다. 자칫 들뜬 마음에 함부로 행동하다간 역린에 손을 대기 십상이다. 그땐 용이 돌변하기에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

한비자는 신하가 군주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해 말하면서 역린을 강조했다. 총애를 받을 때는 어떤 행동도 눈에 들어 하지만, 미움을 살 때는 예전에 칭찬받던 행동이라도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만큼 군주는 까다롭다.

오늘에 이르러선 역린은 상대의 급소이기도 하지만, 절대로 자극해선 안 될 자존심이기도 하다.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반도체 소재 등에 대한 수출규제로 급소를 찌르면서 대한민국의 민심까지 건드렸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거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당장 일본으로 가는 발길을 되돌리고 있다. 회원 수가 130만명에 달하는 일본 여행 최대 카페는 지난 17일부터 임시 휴면 상태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도 일본산 맥주, 라면 등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어제까지는 맛에 끌렸지만, 이젠 피하고 있다. 불매 제품도 유아·초등생 도서, 소형가전까지 전방위로 퍼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소비자들이 감정적이기보다 이성적·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반일 시위나 욱일기 화형식 같은 극단적 행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담담하고 의연하되 요란하지 않다. 정치권의 훈수도 필요 없다. 시민 개개인의 판단과 선택이다. 한마디로 민의가 결집하고 있다. 단순히 일본산을 사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IT 강국답게 SNS로 대체 가능한 국산품까지 안내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선 10명 중 7명이 불매운동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보일 정도다.

▲아베가 이끄는 일본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은 넘겼으나 개헌 발의선은 확보하지 못했다. 양국의 갈등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그럴수록 불매의 바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극일(克日)의 극(克)은 古와 이 합쳐져 만들어진 회의자로, ‘오래(古)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군주가 없는 시대, 오늘의 역린은 민심 속에 있다. 그 부메랑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