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깡이 아지매
깡깡이 아지매
  • 제주신보
  • 승인 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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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세상 풍정을 담아내는 KBS1 TV 일요프로 ‘다큐 공감’을 즐겨본다. 서민적 삶은 대개 감동적이다. 공명(共鳴)하며 오는 게 감동이다. TV 보며 글감을 얻으면,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고.

얼마 전, 프로가 그랬다. ‘깡깡이 아지매를 아시나요?’ ‘깡깡이’란 말이 낯섦에 단박 끌렸다. ‘세상엔 여인들의 저런 삶도 있구나.’ 시종 가슴 울렁거리다 끝나자, 먹먹했다. ‘남자도 힘든 일을….’ 어둠이 내려 있었다.

철강선의 노후를 방지하기 위해 2년에 한 번 배 밑창과 뱃전에 눌어붙은 조가비나 녹을 떨어내는 잡역부 일을 하는 아낙이 ‘깡깡이 아지매’였다. 깡깡이는 아낙이 손에 드는 3.6㎏짜리 망치였다.

무대는 부산 영도구 대평동 수리 조선소 1번지. 1960년대에 제3공화국에 조선(造船) 장려정책으로 철강선이 늘면서 깡깡이 아지매들이 직업군을 이뤘다. 영도는 조선강국을 견인한 한국 조선업의 발흥지이고, 그 중심에. 깡깡이 아지매들이 있었다.

대부분 피난민 후예, 도시 빈민, 농·어촌을 떠나온 실향민들. 낡은 배의 녹을 떨어내는 단순노동밖에 할 수 없는 여인들이다. 한 달이면 열흘정도. 출근하면 회사에서 작업복·안전화·화이버·마스크와 안경을 제공하고, 각자 준비한 비닐로 얼굴을 감싸고 다시 그 위를 수건으로 덮고 마스크를 겹으로 써 일을 한다. 여름엔 무더위에 얼굴에 불이 나고 짓물러 터지고…. 저녁에 마스크를 벗으면 얼굴이 온통 빨개져 있다는 것. 딴 세상 얘기였다.

“일당 1000원 안팎을 받으면 쌀 사지, 연탄 들이지…. 남는 게 없었다.”고 하지 않는가. 40여 년 경력의 70대 할머니 회고다. 박해도 도리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먹고 살아야 하고 자식을 키워야 했으니까.

삼 칸 배를 이어놓은 듯한 360톤 철선이 뭍에 오르면 거기에 10~40명 아지매들이 달라붙는데, 두꺼운 녹을 망치로 치고 그라인더로 밀고 깎아야 한다. 작업 중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5m나 되는 높은 작업대에서 떨어져 치명상을 입는가 하면, 하루 여덟 시간 망치로 치다 보면 손, 허리, 다리 성한 데가 없다는 것. 또 깡깡 소리가 따라다녀 환청에 잠도 잘 안 와 시달린다는 것.

하지만 아지매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딴 건 몰라도 선박수리에 있어선 한국 최고라는 그곳, 깡깡이 아지매들이 있어 대평동이다. 녹을 말끔히 떼고 나서 칠을 올려야 배가 바다에 나가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되니 철선들이 이곳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선소 수리 중 배의 녹 제거가 가장 고난도의 일이라는 것. 그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여인들이라니 놀랍다. 선주들이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오는 것은 부품도 구해야 하지만, 아지매들 손을 빌리기 위함이다. 1980년대 국교 수립 전, 소련 배들도 인도적 차원에서 입항 허가를 받고 들어와 수리를 받았을 정도라니.

현역에 89세 할머니도 있다. 40대 신참이 하나 들어왔다. 70줄 노모가 말로는 안 들으니 함께 일하며 그만두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해 보니 할 만하단다. 대물림하는 건 아닌가. 빠지면 나오기 어려운 게 일이다. 아지매들, 노쇠해 자신을 ‘고철’이라 하면서도, 자존심이 세다. 망치를 두드리며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고.

억척스러운 여인들, 깡깡이 아지매들에게 대평동은 삶의 터전이며 기억의 공간이다. 그들은 전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