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정리
짐 정리
  • 제주신보
  • 승인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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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시간에 매어 살았던 습관 탓일까. 아침시간이라 해서 특별히 바쁠 것도 없는데 괜히 마음이 바쁘다. 한가함에 아직은 익숙지 않아 그렇겠지만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마음이 분주해졌다. 통화 후 종종걸음마다 ‘아니 왜?’라는 물음표가 의문과 질문 사이를 재깍거리는 초침처럼 붙어 다녀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것이 정신마저 혼란스럽다.

요즘 5060세대에 걸쳐진 나이를, 노후 대책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낀 세대란 말로 많이 회자된다. 아래로는 캥거루족이라는 신조어가 생산되며 제 갈 길 찾아 떠날 나이인 자녀들 중 현실적인 이유로 부모 세대의 도움을 받고 있다. 또 위로는 어떤가. 고령사회의 진입으로 예전 같으면 이미, 한 세대가 바뀌어 내 노후만 걱정하면 되었지만 연장된 기대 수명으로 부모님 부양도 하게 되었다. 위아래로 나름의 몫을 나누다 보니 스스로 준비해야 마땅한 내 앞가림이 버겁게 되어 버린 셈이다.

노인시설에 근무할 때였다. 불과 몇 개월 정도의 여명(餘命)이라고 퇴원할 때 들었다며 어머니를 입소시키며 동행한 보호자가 전했다. 숨소리도 거칠었고 몸 상태 또한 얼른 봐도 안 좋아 보였다. 그렇게 한 달여 후, 음식물을 넘기기 힘들어 흔히 콧줄이라 말하는 비위관으로 식사대용 유동식이 제공되었다. 거기에 잘 계산된 식사량, 영양 정도, 위생, 물리치료, 적정 온도, 습도 등 필요한 서비스가 몸 상태에 따라 알맞게 제공되었다. 내 손이 못하는 걸 다른 이의 손이 대신하다 보니 누워 생활하든, 스스로하든 육신만을 두고 본다면 나름 최적화된 삶을 유지하게 되었다.

몇 개월 정도의 여명이라던 수명은 그 후로 몇 년이 지났다. 흔히 요양시설이 생겨 십년 정도의 수명을 연장시켜 놨다는 말들을 한다. ‘장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경제적·정신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가족 간 관계를 불편하게 하면서 서로 소원하게 만들기도 했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면 삶은 축복이 맞다. 그러나 지극히 당연한 일상생활이 타인의 손에 의존하게 된다면 문제는 사뭇 달라진다.

아침에 받은 전화로 마음이 무겁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작품 활동 차 외국에 나갔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그곳 병원에서 뇌졸중이란 진단을 받고 급히 입원했다는 것이다. 편마비라 한다. 건강은 자신하는 것이 아니라지만 아직은 갓 60. 얼마나 건강했던가. 모를 것이 사람 일이라 하나 믿기지 않았다.

머릿속이 뒤엉키면서 몇 달 전 받아, 서랍에 두었던 소책자를 집어 들었다. 임종 과정에 있을 때 연명의료 행위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겠다는 의사결정서다. 그런 상황이면 필요 하겠다는 판단과 또, 의식이 또렷할 때 스스로 결정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막상 서명하려니 별것 아닌 듯했으나 그도 용기를 필요로 하여 그냥 넣어두었던 것이다.

주변에서 당하는 뜻밖의 사고 소식을 접할 때면 누구든 또, 언제든 그런 위험에 노출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 일에서 나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에 미뤘던 일을 쉬이 행동으로 옮기게 하였다. 서명하고 돌아오니 뭔가 큰일 하나를 정리한 느낌이다.

갑작스럽게 접한 지인의 소식에 정신도 어수선하고 몸도 분주한 하루였다. 생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의지가 내 삶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