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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체온조절을 위해 솟아나는 게 땀이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게 땀이다.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산업화는 한국인의 땀의 결정이다. 이때의 땀은 물 같지 않은 고체다. 비유적 표현의 땀엔 이런 단단한 힘이 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원이다.

땀은 추상이나 관념이 아닌, 구체적·현장적인 것이다. 1950년대, 우리는 궁핍에 얼마나 시달렸던가. 야산의 열매와 뿌리와 껍질을 다 먹었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해냈다. 우리를 키운 것은 척박한 땅에 농사지으며 땡볕 아래 줄줄 흘린 어머니의 구슬땀이었다. 한여름 펄펄 끓는 용광로의 화기에 쇳덩이를 녹이던 산업전사들의 땀이 있어 선진국과 어깨를 겯는 경제대국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땀을 흘린 자만이 땀을 닦을 때의 시원함을 안다. 우리 한국인들을 두고 한 말 같다. 전쟁을 치른 뒤, 한국인 치고 피땀 흘리지 않은 이는 한 사람도 없었으리라. 그러니 우리 모두는 땀을 씻을 때 느끼는 그 청량감을 만끽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땀은 노력과 노고를 빗대는 은유다. 노력하며 노고를 마다않는 사람에게서 제일 먼저 목도하는 게 송알송알 맺힌 땀이다. 실감나는 수사다. 이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은 땀을 흘린 자의 것으로 소중하다. 땀엔 분명 대가가 있다.

어떤 사람이 어렸을 적 쥐약을 먹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땀샘 없어져 땀이 안 나온단다. 그래서 조금만 더워도 헉헉거려 견딜 수 없다는 게 아닌가.

개는 땀이 안 나는 짐승이다. 땀을 흘리지 못하니 대신 혀로 침을 증발시켜 더위를 견딘다. 누렁이가 혀를 길게 내놓고 가쁜 숨 몰아쉬는 이유가 있다. 만화에서 개가 땀을 흘리는 것처럼 묘사한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명백한 만화적 과장이다.

사람에게 땀은 생리다.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희망의 신호로 땀을 흘린다. 무심할 게 아니다. 땀나는 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행여, 몹시 놀라거나 오싹 소름끼칠 일을 당하면 자율신경이 바짝 긴장한다. 온도나 활동량에 관계없이 조건반사적으로 땀을 흘리게 된다. 식은땀이다.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았음에도 이마나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으면 특별한 병증(病症)인 경우가 많다. 한자어로 냉한(冷汗)이라 한다. 십상팔구는 병원을 찾아가라는 적신호다.

하지만 손에 나는 땀은 원시인일 때, 마찰력을 높여주어 나무를 타는 데 도움이 됐다 한다. 무거운 걸 들어올리기 위해 퉤퉤 손바닥에 침을 뱉는 건 그와 같은 이치다. 위급상황일수록 손에 땀이 더 나는 것은 이러한 진화적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비롭기까지 하다.

땀을 많이 흘리는 모습에서 일에 대한 열정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땀 안 흘리고 눈앞으로 내리는 성취는 없다. 사람은 모름지기 땀을 많이 흘려야 한다. 평소 많은 운동을 하는 스포츠맨들은 땀샘이 발달돼 있어 땀을 엄청나게 쏟아낸다. 덕분에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도 체온이 많이 오르지 않는다. 단련했기 때문이다.

땀은 단지 체온 조절을 위해 땀샘에서 분비되는 액체가 아니다. 땀으로 잠자던 뼈대가 일어나고 세포란 세포는 다 깨어나 펄펄 날뛰게 한다. 흘린 만큼 사람을 생광(生光)케 하는 게 땀이다. 여름 더위가 절정을 치고 있다. 땀을 흘리며 걷되 이른 아침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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