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명이 죽어 한 몸이 되었다
132명이 죽어 한 몸이 되었다
  • 제주신보
  • 승인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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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백조일손지묘역
1950년 8월 예비검속 민간인들 모슬포 탄약고 일대서 학살돼
한 날, 한 시, 한 곳서 죽어 후손은 한 자손···‘백조일손 묘’ 명명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된 민간인들이 집단으로 학살당한 터인 백조일손지묘역. 유족들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을 수습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그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됐으니 그 후손들은 모두 한 자손이라는 뜻으로 백조일손의 묘라 했다. 바람난장 문화패가 억울한 죽음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작품은 고은 作, 상생.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된 민간인들이 집단으로 학살당한 터인 백조일손지묘역. 유족들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을 수습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그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됐으니 그 후손들은 모두 한 자손이라는 뜻으로 백조일손의 묘라 했다. 바람난장 문화패가 억울한 죽음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작품은 고은 作, 상생.

우리는 모두 한 자손, 이제 그만 편히 잠드소서!!

묘지가 사람들의 생활공간 가까이에 있는 것은 죽음이라는 인간조건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리쿠르고스Lycourgos는 말한다. 살아가는 일이 죽어가는 일이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하물며 죽음은 인간이라는 조건을 처음 갖기 시작하면서 태어난다. 숙명이다. 잘 사는 일이 어쩌면 잘 죽는 일이다. 그러나 죽음의 모양과 형태는 천차만별이다. 이유 없이 죽어야 하는,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함이 인간이 풀어야할 최대의 화두일 것이다.

전쟁은 집단이 벌이는 행위이면서 또 다른 집단을 와해시킨다. 인간이 같은 종족을 무너뜨리는 일. 그해 여름은 내리쬐는 폭염보다 더 잔인했다. 1950820, 모슬포경찰서에 의해 예비검속된 그 일대 민간인들이 일제가 만든 탄약고 터에서 집단으로 학살되었다. 북한군에 협조할 우려가 있다는 명목을 들어 무차별 검속과 처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시신은 6년 후에야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 132. 이미 형체를 알 수 없어 붙들고 울 수조차 없다.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되었으니 그 후손들은 이제 모두 한 자손이라는 뜻으로 백조일손(百祖一孫)의 묘라 하였다.

 

연극인 정민자와 강상훈이 원혼의 넋을 대신해 시구를 읊는다. 서럽게 울려퍼지는 시가 하늘가로 울려 퍼진다.
연극인 정민자와 강상훈이 원혼의 넋을 대신해 시구를 읊는다. 서럽게 울려퍼지는 시가 하늘가로 울려 퍼진다.

한 편의 가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할 수 있다면. 연극인 정민자 님이 이애자 시인의 모슬포 칠월칠석, 연극인 강상훈 님은 오승철 시인의 어떤 단추를 낭송하였다. 원혼의 넋을 대신하며 읊는 시구. ‘까마귀 다 아는 제사라는 문장이 서럽게 설웁게 하늘가로 울려 퍼진다.

비 오네/절뚝절뚝 /짝 그른/팔 다리 끌고// 홀아비 바느질 같은 낮은 밭담 넘어 와// 솔째기 /문 두드리며/젖은 발로/오는 혼백/콩 볶듯/멜젓 담듯/섯알오름의 슬픈 직유// 죽기 살기 살다보면 몽글기도 하겠건만/아직 이 비린 언어를/삭히지 못한 일// 모슬포 바람살이/기죽을 틈이나 줍디가// 마디 곱은 어멍 손/별떡 달떡 빚어놓고// 배롱이 초저녁부터/마당 한 뼘 밝힙디다// 오십서/칠월칠석/까마귀 다 아는 제사//직녀 표 수의 입고/견우 씨 소등을 빌려/산발한/늙은 팽나무/기다리는/큰 질로 -이애자, ‘모슬포 칠월칠석전문.

 

무용가 박소현이 애달픈 절규의 몸짓으로 영령의 넋을 달랜다. 흰나비들이 화답하듯 날아다니며 허공에 새겨진 죽음의 무게와 어우러진다.
무용가 박소현이 애달픈 절규의 몸짓으로 영령의 넋을 달랜다. 흰나비들이 화답하듯 날아다니며 허공에 새겨진 죽음의 무게와 어우러진다.

영혼이 오는 길은 아마 나비가 아닐까. 무용가 박소현 님은 애달픈 절규의 몸짓으로 영령의 넋을 달랜다. 마침 무덤가엔 흰나비들이 화답하듯 날아다닌다. 어떤 영혼인들 무게가 없을까. 허공에 새겨진 죽음의 무게가 낮은 구름으로 내려와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의 죽음을 몰라서도 잊어서도 안 된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지만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칠월이면/아물듯 도지는 상처/역사도/막힌 것 뚫어야/제자리로 흐릅니다./죄지은 자 하나 없고/죄 없는 자만 묻혀/백 서른 둘, 뼈가 엉켜/한 자손이 되옵니다.’ 백조일손 영령을 기리는 고성기 시인이 추모시 낭송과 해설도 함께 이어졌다.

 

오현석이 리코더로 ‘꽃밭에서’와 ‘오빠생각’을 연주한다. 가족을 잃은 상실의 아픔이 녹아든 노래소리가 백조일손묘지 공간에 스며드며 슬픔과 상실의 아픔을 불러일으킨다.
오현석이 리코더로 ‘꽃밭에서’와 ‘오빠생각’을 연주한다. 가족을 잃은 상실의 아픔이 녹아든 노래소리가 백조일손묘지 공간에 스며드며 슬픔과 상실의 아픔을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엔 동요가 슬프지 않았다.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몰랐으니까. 오현석 님의 리코더에서 들려오는 꽃밭에서오빠생각은 슬프기 그지없다. 아마 이곳 백조일손묘지라는 공간이 불러일으킨 감정일지도 모른다. 두 노래는 가족을 잃은 상실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른보다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잔잔한 슬픔이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마지막 사랑의 인사는 그렇게 슬픔을 떠나보내는 이의 마음을 대신한다.

 

김민경 제주국제대 교수가 아코디언 연주를, 그의 아들이 이 반주에 맞춰 애기동백꽃의 노래를 부른다. 다정한 모자(母子) 뒤에 솟아오른 무덤가가 풋풋한 그리움으로 물들었다.
김민경 제주국제대 교수가 아코디언 연주를, 그의 아들이 이 반주에 맞춰 애기동백꽃의 노래를 부른다. 다정한 모자(母子) 뒤에 솟아오른 무덤가가 풋풋한 그리움으로 물들었다.

김민경 님의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애기동백꽃의 노래를 부른다. 모자의 다정한 모습이 한동안 무덤가에 풋풋한 그리움으로 머물렀다.

통곡의 세월에 잠들지 못한 한라산은 지금도 여전히 제주의 남쪽이다. 성악가 윤경희 님이 눈물로 부르는 잠들지 않는 남도에 그만 참았던 울분이 터지고 만다. 찢기는 가슴과 피울음이 고인 채 광야에서를 듣는다. 모른 척 할 수 없는 시대의 아픔이 가슴으로 전이되어 흐른다. 이 얼마나 고독한 죽음인가. 죽음은 영원한 안녕이 아니다. 살아서 건네는 안녕이다.

무덤은 죽음에 대해 사색하게 한다. 삶이 얼마나 값진 시간이냐고 꾸짖는다. 우린 누군가 살지 못한 날들을 대신 살고 있다. 누군가 간절한 이 지금 이 순간이라면 우리에게 슬픔과 상처는 지나가는 소나기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 삶은 더 단단해져야 한다.

사회=김정희
그림=고은
시낭송=정민자 강상훈
해설=고성기
영상=김성수
사진=허영숙
무용=박소현
아코디언=김민경
성악=윤경희
리코더=오현석
반주=김정숙
=김효선

 

다음 바람난장은 4일 오후 5시 고산포구에서 열리는 해녀축제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