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스러운 한·일 갈등의 파고
우려스러운 한·일 갈등의 파고
  • 제주신보
  • 승인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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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며칠 후면 74돌 광복절이다. 광복 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 당시 목숨을 걸고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선열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 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되찾은 나라에서 우리는 지금 경제적 번영을 누리며 살고 있다. 광복절만이라도 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광복의 위업을 마음에 새기고 기리는 게 국민 된 도리란 생각이 든다.

일제 식민지배의 과정을 보면 일본은 힘이 강해지면서 조선의 국권을 찬탈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전쟁을 벌였다. 1592년 중국을 정벌하겠다는 핑계로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 1894년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청과 벌인 청·일 전쟁, 1904년 러·일 전쟁까지. 이 모든 정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실효 지배하기에 이른다.

특히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 전국이 왜군에 짓밟히고, 수십만 명의 군인과 양민이 도륙당하는 등, 국가운영이 마비상태에 이르렀다.

1910년 우리의 국권을 강탈한 후에는 식민통치로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100만 명이 넘는 젊은 장정들을 징병·징용으로 끌어가 사지로 내몰고, 20만 명에 이르는 꽃다운 여인들을 위안부란 이름으로 유린했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한·일 관계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큰 마찰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 날선 감정으로 덤비고 배척한다고 저들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와신상담하며 우리의 힘을 길렀다. 그게 오늘의 우리 경제다. 일본을 앞선 철강 산업이 그렇고, 선박과 반도체 산업이 그 결과다. 그렇지만 지금의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란 진단들이다. 일본이 우리 경제에 태클을 걸고, 우리는 이에 분노하며 맞대응에 절치부심이다. 이번에 맞닥뜨린 경제 제재는 우리의 반일 감정 수위를 한껏 끌어올린다.

그렇다고 과거의 아픈 상처나 들추며 국민의 반일 감정을 무기로 일본과 맞대응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밀월 관계에 있는 미국과 일본도 한·일 관계만큼이나 험악했었다. 일본이 진주만 침공으로 미군 수천 명이 사망하고, 일본 역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수십만 명이 죽었다. 미국이나 일본 모두 서로의 반감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미국과 일본이 국익을 위하여 서로를 협력 파트너로 삼고 밀월관계에 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하여 일본을 이용하려는 미국의 세계 전략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미·일이 한 팀이 되고 중·북·러가 합세하는 판국에 우리만 한·미·일 삼각 편대에서 이탈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발발한다면 우리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작금의 한·일 갈등은 다분히 감정적이다. 기분은 통쾌할지 모르지만 우리 경제가 입을 경제적 손실을 떠올리면 잠을 설치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서로를 이용하듯 기존 관계의 틀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반일 감정을 앞세워 강공만을 고집하다 더 큰 피해를 자초한다면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 몫이다. 국익을 위해서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감정을 앞세운 저돌적인 공격보다는 때론 유연한 우회 전략이 주효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