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무사안녕 기원”…길에서 만나는 제주 민간신앙
“가족의 무사안녕 기원”…길에서 만나는 제주 민간신앙
  • 제주신보
  • 승인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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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미륵불 서자복서 예로부터 어업 안전·풍어 등 빌어
한천 하류 구름다리 가기 전 고시락당·제단 함께 볼 수 있어
용연, 영주12경 용연야범 장소…용두암, 용의 머리 닮아
제주시 용담1동 용화사에 있는 서자복 미륵불. 민간신앙의 대상물인 서자복에는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제주시 용담1동 용화사에 있는 서자복 미륵불. 민간신앙의 대상물인 서자복에는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제주시 용담동 용화사 내에 있는 석불 입상인 서자복은 복신미륵’, ‘자복신’, ‘자복미륵’, ‘미륵불’, ‘큰어른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옛 제주성 서쪽에서 성 안을 수호하는 기능을 했다.

또 불교신앙과 어우러지며 전염병과 같은 질병을 막아주고 동시에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영험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

용화사에서 서자복에게 무사안녕을 빌고 돌아나오면 용연과 용두암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길은 용화사 서자복부터 한두기, 용연과 용두암을 돌아본다.

고려시대 미륵불인 용화사의 서자복

무근성을 돌아나와 용화사로 향하면 고려시대 미륵불인 서자복을 살펴볼 수 있다.

제주도 민속문화재 제1-2호인 서자복 미륵은, 일설에는 13세기경부터, 해상어업의 안전과 풍어, 출타한 가족의 행운을 빌면 효험이 있다해 치성으로 제를 지내고 있다.

치성을 드리면 불교신앙과 미륵신앙이 결합되어 재물과 복을 가져다준다고 전해지고 있다.

서자복이 있는 곳은 용화사라는 개인 사찰로, 위치는 제주시 용담1386-3번지이다.

다음은 서자복에 대한 안내판의 글이다.

제주의 복신미륵(福神彌勒)은 개인의 수명과 행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미륵불, 자복신, 자복미륵, 큰어른 등으로 불린다.

제주성을 중심으로 동서쪽에 각각 1기씩 존재하며,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미륵을 서자복,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미륵을 동자복이라고 한다.

서미륵이라 불리는 서자복은 해륜사 옛터에 들어선 용화사 경내에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석불입상으로, 신장은 약 273이다.

제작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 후기의 불상이 토속적으로 변모하는 과정 중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서자복을 보호하기 위한 용왕각(龍王閣)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용왕신과 복합되어 해상어업의 안전과 풍어를 비는 대상물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또한 서자복은 토속적 불교신앙과 더불어 전염병과 같은 질병을 막아줌과 동시에 아들을 낳고자 하는 기자의례(祈子儀禮)가 결합된 민간신앙의 대상물로 알려져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서자복이 있는 곳은 옛 해륜사(海輪寺)로 용담1동 속칭 병문천과 한천(漢川 또는 大川) 사이에 위치한다.

해륜사를 일명 서자복사(西資福寺)라고도 전한다. 바다에 근접해있고 해발 10m의 그 주변을 절동산이라고 한다.

절왓이라고 불리는 경작지에는 많은 기와편이 흩어져 있다.

절왓 북쪽 지번(地番) 385번지에는 미륵불인 서자복이라 불리는 높이 1.9m의 석불(石佛)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는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만수사지(萬壽寺址)의 미륵불과 마주보고 있는데 성 안을 보호했던 석불(石佛)로 보인다.

해륜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고 19세기 중기에 폐사(廢寺)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1910년경에 용화사라는 사찰(寺刹)이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석불(石佛)도 용화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용연은 제주 시내를 관통하며 흐르는 한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계곡이다.
용연은 제주 시내를 관통하며 흐르는 한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계곡이다.
탐라순력도에 그려져 있는 용두암 근처에서 물질하는 잠녀의 모습.
탐라순력도에 그려져 있는 용두암 근처에서 물질하는 잠녀의 모습.

한두기 고시락당과 세시풍속

한천 하류 구름다리 가기 전 용연병풍바위에 신혈형태로 고시락할망이 좌정돼 있다. 오래된 팽나무에 물색천이 걸려 있고 잡목들이 자라서 가까이 가지 않으면 당의 실체를 볼 수 없다.

음력 2월 영등할망 들 때 요왕(용왕)제를 하고 나서 이곳으로 와 제를 모시고 무사안녕을 발원하여 동네 사람들이 무사하게 지내도록 바라며 빌었다 전해진다. 자연석 위에다 시멘트를 발라서 단장했고 제물을 올리는 제단도 마련되어 있다.

동네 분들의 이야기로는 과거에 이 당은 대단하여 발 들여놓을 틈 없을 정도로 찾는 이가 많았다 전해지며 또한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도 전해진다.

 

이번 여정 길에서 한천 하류 구름다리로 가기 전 고시락당을 볼 수 있다.
이번 여정 길에서 한천 하류 구름다리로 가기 전 고시락당을 볼 수 있다.

용연과 용두암

용연과 용두암이 있는 이곳은 약 10만 년 전 점성이 높은 현무암질 용암이 흐르다가 굳어진 침식지형이다.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지닌 용연은 제주 시내를 관통하며 흐르는 한천(漢川)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깊은 계곡으로 취병담(翠屛潭)이라 불리고 있다.

이곳 절벽에는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수직의 주상절리가 대칭적으로 발달돼 있다.

용연의 모습은 오래전 탐라순력도에도 잘 그려져 있다. 경관이 수려한 이곳은 영주12경 중 하나인 용연야범의 장소다. 제주에 부임한 목사들이 밤에 뱃놀이를 즐겼다 해서 지어진 기록이 용연야범의 의미이다.

용연은 한천(漢川)의 끄트머리로 바다로 이어진다. 한천은 대천(大川) 또는 한내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가물면 마르고 비가 오면 넘친다. 물이 우묵한 곳에 이르러서는 저수지가 되어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이곳을 이름 하여 용추(龍湫)라 한다. 가뭄 때는 이곳에서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기록 중 용추(龍湫)는 오늘날 용연(龍淵)이라 하는 곳인데 그 길이가 1백보 내외이지만 양쪽에 높이 7~8m의 기이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 있고, 그 안이 넓고 아늑해 달밤에 배를 띄우고 놀면 별천지를 이뤄 용연야범(龍淵夜泛)’이라 하여 예로부터 영주십경(瀛洲十景)의 하나로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이 용연 절벽에는 지금도 예전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남겨놓은 마애명들이 남아 있다.

용두암은 점성이 높은 용암이 볼록하게 솟은 하천 형태로 바다 쪽으로 흘러나가 굳은 것으로 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해 깎이면서 용의 머리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옆에서 보면 용의 머리 모습이지만 위에서 보면 얇은 판을 길게 세워놓은 모양이다. 제주도기념물 제57호로 2001년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