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로 간 소년
이어도로 간 소년
  • 제주신보
  • 승인 20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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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현 수필가
고향 후배가 일터로 찾아왔다. 후배 부모의 안부를 묻던 중에 어머니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진 외삼촌의 넋을 위로하려 진혼鎭魂굿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는 불의의 사고로 오라비를 여읜 것이 못내 한이 되어 삭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배의 외삼촌의 이름은 우정인데 우리에겐 우쟁이 성이라 불렸다. 우리들의 골목대장이었던 그는 어린 나이에 어부가 되어 먼 바다를 드나들었다. 열여섯 소년이 어선을 타고 먼 바다로 가야만 할 만큼 가난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던 어느 겨울 초저녁, 우쟁이 성 집에서 어머니의 길고 슬픈 울음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설날 제수祭需감 옥돔 낚시를 위해 먼 바다로 나갔는데, 하늬바람이 거세던 겨울 바다의 높은 풍랑에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었다. 장례는 시신이 없는 채 초라하게 치러졌다.
팔순을 넘긴 우쟁이 성의 누님 꿈에 오라비가 자주 보인다며 진혼굿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깊은 상처를 가진 모든 사람이 언어의 질서로 자신의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굿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씻김굿또는 오구굿은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고 좋은 곳으로 가라는 굿이다. 이승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을 위한 굿이다. 억울한 죽음을 당했거나 한맺힌 죽음을 당했다면 더더욱 이승을 떠나기 어려울 터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난 영혼을 불러 맺힌 것을 풀어주고, 황망히 이승을 떠나느라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제대로 못한 만큼 굿을 통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이별의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시간과 장을 마련해준다. 아쉬움과 한 많은 망자亡者의 혼을 죽음 저편인 저승으로 넘겨주는 것이다. 물에 빠져 죽은 원혼?은 먼저 넋 건지기를 한 후에 의식을 진행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정서적 탈진을 어루만져 준다. 저승으로 떠나 이승과 완전히 결별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어린 날, 포구에서 놀던 옆집 여섯 살 아이는 썰물에 바다로 쓸려갔다. 결혼한 지 달포 밖에 안 된 새신랑은 먼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남편을 바다에서 잃어서 물질을 하며 혼자서 세 아이를 키우던 동네 아낙도 어느 날 바다에서 홀연히 이어도로 떠났다. 제주 사람들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이어도로 간 것으로 여겼다. 바다에는 물 흐름이 소용돌이치는 물목이 있다. 그 물길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뻔히 보이는데도 거슬러 헤엄쳐 나오지 못할 뿐더러 구하러 갔다가는 함께 소용돌이에 휩쓸려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곳을 이어도로 들어가는 문이라 여겼다.
이어도는 제주인 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유토피아다. 그곳은 무릉도원이고 낙원인 섬이며 죽음 너머의 피안의 섬이자 환상의 섬이다. 누구도 이어도는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서,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불귀不歸의 섬, 신앙과도 같은 전설의 섬인 이어도는 힘든 사람들의 위로처이자 설움과 아픔을 어루만져주던 주문呪文이었다.
여든 살이 넘어서도 바다로 가는 해녀들이 있다. 그들에게 바다는 억울함과 분노를 씻어내며 슬픔을 위로받고 설움을 풀어버리는 공간이자, 어머니의 품과도 같고, 숙명이고 덫이며, 위로처이자 피난처다,
 
바다 사람들은 제주 바다 속 어디엔가 있을 영혼의 쉼터이자 안식의 땅인 이어도를 목메게 부르며 살았다. 이어도는 고통스런 현실을 잊고픈 상상의 나래였는지도 모른다. 이어도 어디엔가 옆집 아이와 우쟁이 성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