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벡(tyv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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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 농업인·수필가

문제는 맛이다. ‘맛집찾는 노마드행렬이 나라 안팎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맛없는 음식 들이밀면 어느 누가 수저를 들겠는가.

감귤도 마찬가지이다. 철 따라 온갖 과일들이 시장마다 풍성한데, 맛없는 감귤에 손이 갈 소비자가 있을 수 없다.

감귤은, 맛 중에서는 특히 당도(糖度)가 우선이다. 높은 당도와 함께, 특유의 적당한 당산비(糖酸比), 거기에 신선도를 갖추면 금상첨화의 명품과일이 된다.

시나브로 달이 차오르듯, 감귤 열매들이 탱글탱글 제 속들을 채우고 있다. 급수 조절과 일조량 확보를 통해, 당도를 높이는 일은 온전히 농부들의 몫이다.

감귤이 겨울 한 철에만 생산되고, 공급이 절대적으로 달릴 때는, 당도는 물론 크기도 문제 되지 않았다. 희소성으로 하여, 생산만 하면 언제나 전량 절찬리에 판매되었다. 감귤나무가, ‘대학나무로 대접받던 시절 이야기다.

그런데 다양한 품종의 감귤들이 사시사철 생산되고, 국내외 과일들 간에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감귤에게도 살아남기 위한 선택지가 주어졌다. 높은 당도와 함께 적당한 크기의 기준을 통과한 감귤만이, 제 값을 받게 된 것이다.

일단, 크기는 적과(摘果)를 통하여 적정 크기를 담보할 수 있다.

문제는, 당도를 높이는 일이다. 당도는, 일조량과 토양수분에 의하여 결정된다.

하우스재배 감귤인 경우는, 지붕을 열고 닫으며 토양수분과 일조량을 관리한다.

그런데 노지 감귤인 경우, 간벌을 통해 일조량을 늘리는 것 외에 딱히 당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하늘만 쳐다보며, 손을 놓을 수야 없지 않은가.

타이벡(tyvek)’을 이용한 토양피복은, 농민들의 간절함 속에서 찾아낸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다.

타이벡은, 폴리에틸렌 소재의 섬유원단이다. 통기성은 있지만 액체는 쉽게 통과하지 못한다. 때문에 하얀색 타이벡은 빗물을 차단하여 토양의 습도를 조절할 수 있고, 동시에 햇빛을 반사시켜 나무 밑 부분 열매들의 고른 착색을 도와 준다. 물과 일조량을 조절하는 타이벡의 작용으로, 당도가 높아지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타이벡을 이용한 토양피복은 격년주기(隔年週期), 열매가 많이 달린 해에 하는 것이 좋다. 토양피복이란 가혹한 식생환경때문에 기진맥진했던 나무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한 해 정도는 기다려 주는 것이 나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타이벡의 복사열은, 열사(熱沙)의 사막을 방불케 한다.

그렇지만 농사일은 다 때가 있는 법인데, 더위 무섭다고 미룰 수 없지 않은가.

폭염을 뚫고, 나무들의 길을 따라 타이벡 원단을 마름질했다. 종일 나무들 사이를 뻘뻘 기어다니며 망치로 핀을 박아 타이벡을 이어 붙이느라, 땀으로 작업복이 흥건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함박눈 소복이 내린 것 같은 갈맷빛 농장 바라보며, 더운 땀을 들인다. 막걸리 한 사발에, 안분지족(安分知足) 농심(農心)이 콧노래 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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