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새겨진 한시…옛 묵객들 멋과 풍류 녹아 있다
바위에 새겨진 한시…옛 묵객들 멋과 풍류 녹아 있다
  • 제주신보
  • 승인 201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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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 마애명 공원 한자 새겨진 바위
긴 세월 보존돼 역사 고증 자료 가치
용천수 풍부한 서한두기에 마을 형성
다양한 어종 잡혀 주민들 생계 유지

옛 선인들은 용연에서 조각배를 타서 시를 읊고, 암석에 글을 새기며 유유자적 삶을 즐겼다. 이번 질토래비 역사문화길은 산수유람의 풍류와 산천경승에 대한 감탄을 담은 마애명과 그 일대 공원을 지나 제주시 북서쪽 바닷가 마을인 한두기 마을을 돌아보고자 한다.

 

제주시 서한두기에 있는 용천수 통물의 모습. 태풍 나리, 차바 등으로 인해 유실됐다가 옛 사진과 마을주민,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제주시 서한두기에 있는 용천수 통물의 모습. 태풍 나리, 차바 등으로 인해 유실됐다가 옛 사진과 마을주민,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취병담과 마애명 공원

20013월 제주도 기념물 제57호로 지정된 용연. 한라산 북쪽 산록을 흘러내리는 하천에는 하방침식으로 협곡구간이 많이 출현하는데, 하구에도 높이 15m의 협곡구간이 발달했다.

용천수와 섞인 해수가 협곡을 채워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들어 내면서 취병담(翠屛潭), 용연(龍淵) 또는 용소(龍沼)와 같이 소를 뜻하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다음은 용연 동쪽 동산에 세워진 마애명 공원 안내판의 내용인 비췻빛 벼랑에 새겨진 옛 시의 내용이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한 한천(大川)이 바다로 흘러드는 이 냇골을 예로부터 용추 또는 취병담이라 불렀다. 가까운 곳에 용의 형상을 한 용두암이 있는데다 길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이곳의 물속에 용이 잠겨있다 여긴 예 사람들이 이를 신성시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 (병풍바위에) 새겨져 전해지는 시들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흥취를 돋우기도 하고, 옛 정취에 빠져들게 하기도 하고, 신선놀이의 멋을 흉내 내어 보기도 하고, 제주의 옛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게 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마애명이란

금석문(金石文)은 쇠붙이에 글씨나 그림을 새긴 금문(金文)과 돌이나 암석(巖石)에 새긴 석문(石文)을 일컫고 있는 말이다.

금석에 새긴 문자나 도형은 쉽게 마모되지 않고 오랜 세월을 견뎌내기 때문에 종이나 죽백 등에 기록된 문헌보다 내구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현장성으로 인해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고증하는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을 새기는 과정에 여러 가지 기술을 적용한 서체와 조형성 등이 나타나기 때문에 높은 예술성도 가지고 있다.

마애명은 마애각석(磨崖刻石)이라고도 하는데, 절벽이나 단애를 갈아서 돌에 글을 새긴다는 뜻이다.

마애명이란 마애각석 중 자연적인 바위나 절벽에 글자를 새겨 넣은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지명을 알릴 목적이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한다.

어떤 일을 기념하기 위해 새기기도 하고,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새겨져 무엇인가를 기리고 새긴다는 것이다.

 

용연 동산 동쪽 위에 조성된 마애명 공원의 모습. 여러 한자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용연 동산 동쪽 위에 조성된 마애명 공원의 모습. 여러 한자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용연 마애명 공원

용연의 다른 이름인 취병담과 선유담 등 여러 한자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경치가 좋은 곳에는 그 풍광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 붙이고 잘 보이는 곳에 새겨두어 그곳을 지나는 문인이나 묵객들이 그 풍광을 찬미하거나 논평하는 글을 짓게 하는 것이 선인들의 삶의 모습이자 멋부림이었다.

마애명 공원에 전시된 시 가운데 한편을 원문과 함께 소개한다.

翠屛潭(취병담)’은 용연에 새겨진 마애석각 중 가장 오래 된 글로 누가, 언제 새겼는지는 알 수 없다.

1578(선조 11) 제주에 왔던 제주목사 임진의 아들 백호 임제가 용연에 들렸다가 이 석각을 보고 남긴 시가 전해진다.

다음은 향토사학자인 홍기표 박사가 제공한 백호(白湖) 임제(林悌)의 남명소승(南溟小乘)에 실린 취병담(翠屛潭)에 관한 시이다.

岩留三字 龍臥千秋.(바위에 세 글자 남아 있고 용은 천년토록 잠겨 있다.)

城南只數里(성 남쪽 몇 리 쯤에)

有峽淸而奇(협곡 하나 청아하고 기이하다.)

石爲白玉屛(바위는 둘러 백옥병풍)

潭作靑琉璃(못은 파란 유리잔)

岸上幾叢竹(언덕 위의 몇 무더기 대숲)

蕭蕭海風吹(해풍이 불어 소소한데)

扁舟倚桂棹(일엽편주 노에 기대어)

玩歸遲遲(노래하며 즐기다 천천히 돌아가세)”

 

복원 전의 서한두기 용천수 통물의 모습으로 1960~1970년대 사진으로 보여진다.
복원 전의 서한두기 용천수 통물의 모습으로 1960~1970년대 사진으로 보여진다.

서한두기 설촌과 용천수 통물

제주시 북서쪽 바닷가 마을인 한두기는 오래전부터 용연을 기준으로 동쪽을 동한두기, 서쪽을 서한두기라 불려오고 있다.

서한두기에는 통물, 머구낭물, 엉물, 수액이물 등의 용천수가 풍부했다. 19세기 초 통물과 머구낭물 주변에 형성된 한두기 마을은 한득 또는 한독(大獨)으로 불리다가 마을 규모가 커지면서 대덕개 또는 대독개로 불려 왔다.

마을 주민들이 돌을 등짐지어 물통들을 만들어 식수로 사용하였다.

용천수는 눈 또는 빗물 등이 지하로 스며들어 대수층을 따라 흐르다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이다.

예부터 제주선인들은 용천수가 솟아나는 해안을 따라 마을을 형성해 생활했다.

서한두기 물통은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 마을주민들의 식수, 생활용수, 허드렛물 등으로 이용되었다.

인근 마을인 먹돌세기, 중대골(지금의 월성마을과 명신마을)의 주민들까지 우마차를 이용해 물을 길어갈 정도로 지역주민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서한두기 물통이 한천 하류에 위치하고 있어 민물과 바닷물이 혼합되는 특성으로 숭어, 민물장어, 새우, 바다참게, 은어, 도다리, 복어, 미역치, 멸치 등 다양한 어종들이 서식했다.

이는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 시에 먹거리로 사용됐다.

이처럼 마을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이용돼 오던 중 태풍 사라호(1959), 나리(2007), 차바(2016)으로 인해 유실되었다가 옛 사진과 마을주민과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2018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하지만 복원 물통 외벽담은 기존의 바닷가 돌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