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의 숲길에서 만난 연리목
장생의 숲길에서 만난 연리목
  • 제주신보
  • 승인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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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전 제주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인간의 손길이 닿은 듯 안닿은 듯, 나 혼자인 듯 아닌 듯, 바람과 새 소리만 들리는 듯 아닌 듯, 산수국꽃이 피는 듯 지는 듯한 자연의 향기가 그윽한 장생의 숲길이 나만의 안식처일 때가 있다.

이곳의 돌담은 측은함, 조릿대는 안온함, 편백나무는 담백함을 뿜고 있는 것 같다. 한참 묵은 때를 씻으면서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과 미소를 교환하며 걸으면 강은교는 나무가 말하였네/ 나의 이 껍질은 빗방울이 앉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햇빛이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구름이 앉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안개의 휘젓는 팔에/ 어쩌다 닿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당신이 기대게 하기 위해서/ 당신 옆 하늘의/ 푸르고 늘씬한 허리를 위해서라고 조곤조곤 읊는다.

7월 중순이지만 숲속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그리워 태양을 마중나가고 싶다. 이 숲속을 걸으면 달 같은 해와 해 같은 달이 번갈아 가면서 빛을 흘린다. 숲속으로 헤집고 들어온 빛이 산수국꽃과 조릿대잎에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 황홀하다.

장생의 숲길을 1시간 30분 정도 걸으며 마음을 씻고나면 의젓한 연리목이 대화를 청한다. 이 숲길의 중심부에서 만나는 연리목은 그저 안온감을 선물하는 것 같다. 이 숲길에 의해 묵은 때를 세정한 후 정결한 마음으로 이 연리목과 조우하는 것은 반가운 연인을 만나는 기분일 것이다.

노산 이은상 나무의 마음이란 시에서 나무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소라고 나무의 감성을 노래했다. 피터 톰킨스은 식물의 정신세계에서 식물의 삶과 내면세계의 표현에 대해 기술했다.

식물 연구가들은 식물도 느끼고, 기억하고, 생각하고, 감정을 나타내며,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과 교감하며 인간의 마음과 의도까지도 간파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우주와도 교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상술한다.

연리목은 한정된 분량의 햇볕과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다투지 않고, 서로 손을 맞잡고 성장하면서 한 몸이 된다. 환언하면 이들은 생물학적·화학적 공생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목인 동시에 교훈목으로 우뚝서는 원천이다.

연리목은 홀로 자랄 때보다 더 강한 힘을 표출한다. 이들은 합금처럼 서로가 상대방이 장점을 표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의지하기 때문이다. 한 몸으로 자라면서도 자신의 성격과 기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아간다. 개개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상부상조하는 이들 삶의 형태가 아름답고 숭고하다.

이 덕택에 인간을 비롯한 동물에 필수품인 산소가 충분히 공급된다. 그래서, 우리는 숲속에서 상쾌한 공기를 맛본다. 이런 바탕에서 애틋한 사랑을 비롯하여 수많은 교훈이 잉태된다.

장생의 숲길을 걸으면 지천으로 흩어져 있는 산수국과 조릿대가 정겹다. 산수국꽃은 흰색으로 피기 시작한 후 점차 시원한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 기운을 담기 시작하여 자색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꽃의 특성과 자연의 섭리는 그저 경이롭다.

눈에 확 띄는 산수국 헛꽃은 다양한 색깔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이것보다 크기가 작은 진짜꽃의 아름다움을 놓치면 못내 아쉬울 것이다. 헛꽃이 활짝 핀 다음 그때까지 꽃봉오리 상태로 있던 진짜꽃이 피기 시작한다. 쪼그려 앉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짙푸른 보석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 것 같다. 울창한 숲 틈새로 스며드는 가날픈 햇살과 솔바람이 진짜꽃에 내려앉을 때는 별들의 잔치 같은 신비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산수국꽃에 의한 신비로운 축제가 끝날 즈음에는 아련한 햇살에 의해 조릿대가 눈부시게 웃는다. 생명력이 끈질긴 조릿대는 다양한 영양분을 잉태하고 인간의 품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따뜻한 손길에 의해 부화된 것들은 장수시대에 건강과 미용분야에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