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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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선 수필가

이태 전에 꺾꽂이 하였던 황국화가 장마 가운데 꽃을 피웠다. 하늘 향해 펼친 꽃들은 큰 비속에서도 작은 꽃잎 하나 떨구지 않으며, 그 폼이 당당하기 그지없다.

계획에 없었던 일이 생겼다. 아들이 1층 입구에 있는 원룸에 살게 된 것이다. 몇 해 동안 홀로 생활을 하고 있었던 제주 집에, 직장을 이유로 자연스럽게 입주하였다. 1층 전부를 사용하고 있던 오랜 지인은, 본인이 사용하던 공간의 일부를 흔쾌히 내어 주었는데, 나는 유쾌하지 않은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내색하기도 쉽지 않는 것이, 눈치 빠른 아들에게 행여 상처가 될까봐 조심스러운 부분도 사실이다.

작년 가을, 제주 지역특성상 큰 기업이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데, 내실이 탄탄한 기업체가 눈에 띄어, 취직을 준비하는 아들에게 툭! 던지듯 한마디 하였더니, 얼마 후 취업 포털사이트에 모집광고가 실렸다며 연락이 왔다. 내가 보는 시각과 다를 수 있어, 자료를 찾아보라는 말을 던지고 며칠이 지났을까. 아들이 전화를 하여, 뜬금없이 생산직으로 지원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순간, 얼음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기분으로 멍하게 있다가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들이 취업 서류를 접수하겠답니다. 사무직이 아니고 생산직!”

집에 불이 나도 뛰어가지 않을 성격을 가진 남편이 역대 급의 질문을 보내왔다. “먼 소리?, 생산직?, 공장?” 답신하는 나 역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해 메시지 보내는 손이 떨려서 입력할 수가 없었다.

뼛속까지 문과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녀석이었고, 기계라고는 작은 공구하나도 제대로 잡는 걸 본 적이 없으니, 대략난감을 더해 기가차서 호흡이 가빠질 지경이었다. 우리 부부의 다급한 물 밑 연락과는 달리, 자기방식의 논리로 또박 또박 말을 하는데, 평소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했던 내가 반박할 수 있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자기 나름대로 자료를 검색하고 생각을 한 후에 내린 결론이란다. 그 회사 창업자의 생각이 아들의 마음에 쏘옥~ 들어왔고 또, 나름의 이유를 대며, 생산의 업무를 알지 못하면서 관리직으로 근무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답을 끌어냈다. 한술 더 떠서 생산직이 그 회사의 꽃이란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

머무르지 않겠습니다.”

차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서류심사에 합격한 아들은 까다롭다던 두 번의 면접도 통과하여 합격통지를 받게 되었다. 전후 상황을 모르는 부산에 있는 언니네 가족들은, 제주로 발령 난 나의 아들을 마치 유배 보내는 것처럼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틀 전에도 두루마리처럼 말아도 될 만큼 긴 글의 편지가 왔다. 보고 싶어서 샤워기 물을 틀어놓고 꺼이꺼이 울었다며, 심지어 나보고 혼자 독차지해서 좋겠다는 언니의 메시지다. 내 마음도 모른 채.

어쩌면, 편협 된 사고가 습()이 되어버린 나의 가식.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했으나 너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나의 속물근성을 알고 있는 듯, 슬쩍 건드리며 내게 말했다. “어무이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 무엇이든 가급적 논외로 버려두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더라고. 그것은 열린 사고로 세상을 보겠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취사선택을 구분할 나이가 되었다는 걸 이야기 하는 것 일 테지.

오늘도 이른 아침 출근을 하는 아들을 배웅하기 위해 마당에 서성인다. 제 철이 아님에도 황국화는 여전히 반듯하게 보인다. 그래, 가을이 마땅히 너의 계절이라 국한된 생각을 접으련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듯, 필 수도 있고, 머무를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아들의 결정이 우리부부의 어쩌면 당연하였던 부끄러운 생각을 꼬집었다. 수수백년 정()속으로 흘러들어 자식이 된 귀한 존재인 아들 또한 황국처럼 어느 환경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을 거라는 걸, 힘겹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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