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염불 이산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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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한국전쟁 후 남북 분단으로 발생한 이산가족이 10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그런 실향민들의 통한을 증언하는 게 이산가족 상봉이다. 2000년 8월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뤄진 뒤 작년까지 21차례 성사됐다.

1차 이산가족 상봉 때 남쪽 아내가 북쪽 남편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래 니, 자전거 사왔나?” 남편이 피란 길에 쓸 자전거를 구한다고 집 나간 뒤 소식이 끊겼었다. 남편이 면목 없다며 눈물만 흘리자 아내는 “괘씸하긴 해도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헤어질 때 부부는 “만나자마자 또 이별”이라며 통곡했다.

다른 한 곳에선 상봉을 마친 남북 형제가 버스 차창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을 마주한 채 생이별의 눈물로 먹먹해 했다. 당시 언론은 ‘언제 다시 만나나…’라며 가없는 회한을 전했다.

▲1988년 이후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은 13만3306명에 이른다. 이 중 59%인 7만8903명이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안타까운 건 생존자 5만4403명 중 64%가 80대 고령이고 해마다 4000명 넘게 운명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산상봉을 지금처럼 하다간 500년 넘게 걸릴 것이란 탄식이 나온다. 1년에 한 차례꼴로 100명씩 찔끔찔끔 진행하면 544년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그간 이산상봉을 통해 만난 사람은 지난해 2월까지 대면상봉과 화상상봉을 합해 남북 양측 4300여 가족·2만1700여 명에 그친다. 이대로 가면 10년 뒤엔 이산가족 상봉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참으로 갈 길은 먼데 시간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 제21차 상봉행사 후 남북 이산상봉이란 말이 쏙 들어갔다. 추석·설 명절과 함께 상봉 행사의 최적기로 여겨온 8·15가 어제였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본 뒤 많은 기대를 했던 실향민들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갈 노릇이다.

이산가족의 사연은 언제나 가슴을 저미게 한다. 맏아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반세기 넘게 이사 한 번 않고 같은 집에 머문 노모가 있는가 하면 빛바랜 사진 한 장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이야기도 있다.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를 70년이나 만나지 못하고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이산가족의 생이별보다 더한 아픔이 있을까. ‘죽기 전에~’라는 그들의 간절함에 남북 정상은 대답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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