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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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순 수필가

“사랑이 뭘까?” “그냥 생각나고,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게 사랑 아닐까?” “아니야, 사랑은 그런 맹물 같은 감정이 아니야, 같이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숨이 막힐 것 같고, 옆에 있어도 끝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게 진짜 사랑이야.” “그거야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지” “사랑과 집착이 뭐가 다른데?” “그 사람을 소유하고 싶고, 나만의 것이고, 상대방의 완전한 소유물이 되어주고 싶은 것, 그런 건 집착일 뿐이야” “그래도 뜨뜻미지근한 감정놀음을 사랑이라고 부르기는 싫어, 불꽃처럼 강열하게, 활화산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그런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란 생각이야”

우연히 엿듣게 된 어느 연인 사이의 열띤 대화다.

오래 전 간병 도우미를 할 때 만났던 할머니의 에피소드다.

병원을 가는 날은 나보다 먼저 준비하여 나를 기다린다. 병원 물리치료를 받으며 가까워진 할아버지와 데이트 하렴이다. 사춘기 소녀처럼 마음이 들떠 안절부절 할 때도 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인다. 가끔 만나서 식사도 하고 오붓하게 커피도 마시며 인생 토론도 열정적이다. 사랑에 열중하며 삶을 즐기는 모습이 아름답다. 늙어갈수록 사랑의 대상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듯 두 분의 삶에 생기가 넘친다. 앞서 두 연인이 제 감정을 드러내며 주고받는 이야기가 이 두 분에게도 어느 정도 맞을 것 같다.

삶의 의욕을 잃고 식사도 거르며 지낼 때는 안쓰러웠는데 지금은 딴 사람이다. 애창곡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여자의 일생’을 애달픈 소리로 부르시더니 요즘은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당당한 목소리로 흥겹게 불러댄다.

사랑에는 적절한 가식이 더해져야 제 맛이 난다더니. 그 가식을 덧댈 수 있는 용기와 기교가 필요함을 할머니는 이미 터득하고 있다.

사랑의 감정이 점점 아리송해져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봤다. ‘사랑의 정체가 뭐야?’

돌아온 답장에는 하트 모양만 여럿 그려있다. ‘사랑은 이런 거야’라는 답을 기대했는데. 하트 안에 사랑의 모든 게 담겨있다는 게 아닌가. 친구도 사랑의 정의를 선 듯 내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긴 사랑이란 서로 다른 내면형질을 가진 타인과 만나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형질이 수십억 가지가 넘는다니 사랑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의 교류인가. 그런데도 어느 작가는 ‘사랑에는 후회도 없고 그 아픔조차 아름답기에 어떤 삶을 살든 사랑만큼은 미루지 말고 감행하라’ 하신다.

나이가 들어 누군가를 만나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행복의 문으로 들어서는 것. 사랑의 설렘은 잦아들던 엔도르핀을 흐르게 하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사랑의 마력이다. 몸과 마음을 사를 수 있는 간절한 사랑을 할 수만 있다면 끝이나 결과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직 사랑하며 살아가는 과정, 그 삶에 의미와 가치가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외로운 황혼의 두 분 사랑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어쩌면 지금도 철부지 사랑에 빠져 저들만의 행복에 취해 있을 할머니 할아버지. 설령 사랑이란 끝 모를 블랙홀에 빠져 꼴불견이 된들 그게 얼마나 황홀한 삶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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