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전투와 선승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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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영화 ‘봉오동전투’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대개가 ‘어쩌다 독립군’이 된 이들이 일본군 정예 요원으로 편성된 월강추격대를 만주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정규 독립군 분대장의 지휘를 받으면서 신식 무기로 무장한 추격대를 상대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상대가 가까이 오면 사정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력 질주하고, 추격을 멈추면 공격해 뒤쫓도록 자극한다. 마침내 봉오동에 이르러선 ‘독 안에 든 쥐’로 만든 후 사방에서 맹공을 가한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이른바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전략이다. 먼저 이길 수 있는 환경(先勝)을 만들어 놓고 싸웠던(求戰) 것이다.

실제로 봉오동은 고려령의 험준한 산줄기가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치며 장장 수십 리를 뻗은 계곡 지대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홍범도 장군(1868~1943) 등이 이끈 연합독립군 부대는 1920년 6월 7일 이곳에서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200여 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대승을 거뒀다. 독립군 최초의 이 승리는 그해 10월 청산리 전투로 이어진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주목한 것도 ‘선승구전’이다. 우선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명량(울돌목)이다. 지형과 조류 등 지리적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다.

전투 초기 명량의 조류는 거의 정조기(停潮期)였다. 일본 수군이 이곳에 이르자 조류는 방향을 바꾸어 흐르기 시작한다. 좁은 수로에서의 불규칙하고 거센 물살은 적선의 진형(陣形)과 대오(隊伍)를 흩트려 놓았다. 조선 수군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대반격을 감행,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13척으로 133척을 이긴 것이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회오리(울돌목 바다 물결)를 이용할 생각을 어찌하셨습니까”라고 이순신에게 묻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전략의 탁월함에 감탄한 것이다. 이 한 번의 승리는 임진왜란의 흐름까지 조선에 유리하게 바꿔놓았다.

▲한·일전에서의 승리를 다룬 영화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고, 환호하고 있다. 이를 ‘국뽕(국가+히로뽕)’으로 폄하하기에는 그 메시지의 의미가 크다. 단순히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이나 주관적인 감으로 무장해 무모하게 나서지 않았다. 승산을 정확히 분석했고 인내를 갖고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한·일 경제 전쟁에서도 이 같은 전략은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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