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지석’ 그대로인데…제주대 옛 본관 역사속으로
‘신당’·‘지석’ 그대로인데…제주대 옛 본관 역사속으로
  • 제주신보
  • 승인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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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목적 강당 위쪽에 있는 궁당
상조대왕·정절상군농 등 모셔
운동장 서남쪽엔 고인돌 유적
옛 장례법·사후 세계관 등 담겨
제주대 용담캠퍼스 철거되고
길성운 전 도지사 공덕비 남아
아름다운 곡선 형태를 하고 있는 제주대학교 용담캠퍼스 구 본관의 현관(사진 위쪽)과 후면 모습.
아름다운 곡선 형태를 하고 있는 제주대학교 용담캠퍼스 구 본관의 현관(사진 위쪽)과 후면 모습.

제주시 용담골에 위치한 제주대학교 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에는 고인돌과 할망당 등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존 해야 할 문화유적들이 있다.

이번 역사문화 탐방은 제주사대부고에서 이뤄진다.

한편 질토래비는 역사문화길을 더 많은 도민과 공유하기 위해 학교와 협약을 맺었고, 제주사대부고는 공간을 개방하기로 했다.

 

제주사대부고 다목적 강당 위쪽 동산에 있는 궁당.
제주사대부고 다목적 강당 위쪽 동산에 있는 궁당.

다끄네 본향당인 궁당

궁당이란 바위나 구멍에서 나타난 혈신(穴神)을 모시는 당이다.

이 당에는 다끄네와 정뜨르주민들이 정월에 택일하여 다닌다고 한다.

제주사대부고 다목적 강당 바로 위쪽 나무가 울창한 동산에는 오래전부터 궁당 신위가 좌정해 있다.

바닥과 제단이 시멘트로 단장됐고 잘 정비돼 있는 신당이다.

팽나무가 신체로 모셔서 지전물색이 걸려 있고 지전도 올려져 있다.

궁당은 제주시 용담 3(일명 다끄네:修根洞)의 수호신을 모신 신당이다.

모시고 있는 신은 상조대왕·중전대부인·정절상군농이다. 이 신들은 본래 제주시 용담2동 한내(漢川)가에 있었다가 고종 19(1882)에 훼철(毁撤)된 내왓당(川外祠) 신들이라 전해진다.

다음은 궁당에 얽힌 설화이다. 여자는 임신을 하면 육식을 먹고 싶어 하는데, 이 당의 큰부인 중전대부인은 돼지고기를 금하고 있었다.

큰부인은 임신 중 돼지고기를 먹은 작은부인을 부정한 여인이라 해 멀리한다.

그래서 큰부인인 중전대부인은 궁당 안자리에 좌정하고 작은부인 정절상군농은 바깥에 좌정한다.

이후로 제를 지낼 때 작은부인인 정절상군농 제단에는 돼지고기를 올리고, 큰부인인 중전대부인 제단에는 돼지고기를 올리지 않는다.

 

제주사대부고 운동장 서남쪽에 위치한 지석묘의 모습.
제주사대부고 운동장 서남쪽에 위치한 지석묘의 모습.

고인돌

고인돌 소재지는 제주시 용담동 587번지로, 현 제주사대부고 운동장 바로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의 남서편을 제외하고 그 주변은 흙과 잡석으로 완전히 매립돼 있다.

상석의 크기는 길이 270, 207, 두께 50~105이며, 그 장축 방향은 북동이다.

상석면의 기울기는 남서쪽이 약 5˚정도 낮다. 지석은 5매가 고여 있다. 원래 지석의 수는 7매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북동, 남동 부분에서 판석상 지석 2매가 없어졌다. 이는 상석 파면에 지석을 받쳤던 흔적으로 알 수 있다.

상석의 남서쪽은 지석 없이 막음돌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석의 크기는 북쪽 것은 길이 150이상 되고 남쪽 것은 60이상이다.

이 지석묘는 잘 다듬은 판석상 지석으로 석실 자체를 구성하는 지상위석식 고인돌이다.

석실의 크기는 길이 210, 160, 높이 60이다.

1959년 조사 시 석실 내부 바닥에서 간단한 석곽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원전 3세기 탐라형성기 무렵 제주 곳곳에는 청동기시대에 비해 현저히 커진 대규모 마을들이 등장한다.

제주시 삼양동, 용담동, 외도동, 서귀포시 화순리와 예래동 등에서 발견된 마을 유적에서는 100기가 넘는 집터들이 발견됐다.

무덤과 제의공간, 생산공간, 저장 및 작업공간, 광장, 저수시설 등 마을의 내부공간이 용도별로 구분돼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어 대규모 마을을 통솔할 수 있는 강력한 지배층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주지역에서 확인된 독널무덤인 옹관묘 유적은 제주시 용담동 고분, 도련동 옹관묘, 하귀1지구 유적, 서귀포시 화순리 유적 등이 있다.

이곳 주민도 같은 시기 육지부 주민들과 동일한 장례법과 사후 세계관을 공유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제주대학 초창기 시절 학장을 지낸 길성운 전 도지사의 공덕비.
제주대학 초창기 시절 학장을 지낸 길성운 전 도지사의 공덕비.

제주대학교 요람인 용담캠퍼스와 길성운 학장 공덕비

제주대학교 전신은 19528월 개교한 제주초급대학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당시 제주향교 명륜당에 설립한 제주대학원을 모체로 해 국문과, 영문과, 법학과, 축산과 등 4개 학과의 제주초급대학이 인가됐다고 전한다.

1955년 도립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됐다. 1962년 국립대학으로 1982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돼 오늘에 이른다.

실제 지금의 제주시 용담동 사대부고 교정에는 제주대학의 초창기 시절 학장을 지낸 길성운 전 도지사의 공덕비가 남아 있다.

제주대학교 용담캠퍼스는 제주공항과 바다가 가까워 시설을 확장하기가 곤란한 입지였다.

그런 와중에 국립 제주대학교 초대 학장이던 문종철 선생이 본관 신축을 추진했다.

당시 용담캠퍼스는 김중업 선생에 의해 설계됐고, 1964년 정부 예산으로 신축 공사가 2년 공기로 착공 됐는데 예산 부족으로 공사가 지체되고 1970년 완공하게 됐다.

조개껍질을 펼쳐놓은 듯 한 현관, 2층과 3층으로 연결되는 후면 경사로의 기하학적 곡선은 해초류를 연상하게 하고 교수 연구실로 사용했던 3층을 마치 날아갈 듯 한 비행기 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을 떠올리게 하는 등 지역 풍토를 배려한 강렬한 조형적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제주대학교 옛 본관 터는 바다와 인접한 들판이었고 한 때는 비행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옛 본관은 방수공사 진행 과정에서 붕괴 위험이 있는 것으로 판단돼 1994년 대한건축학회의 의뢰로 건물구조 안전진단조사를 벌인 결과 보수와 보강이 불가능하다는 결론, 1995년 제주대학교 옛 본관은 철거됐다.

제주대학교 옛 본관은 1993년 한국 건축계와 지역 문화계가 힘을 모아 보존 운동을 벌였던 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원로 건축가 80여 명이 총출동하여 제주 문화예술계 원로들과 한국현대건축사의 중요 자료이고 제주도의 문화유산이므로 재생돼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