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풀내음 솔솔…정자에 누워 낮잠 자볼까
싱그러운 풀내음 솔솔…정자에 누워 낮잠 자볼까
  • 제주신보
  • 승인 2019.08.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양 서식지, 국내 3대 민간정원으로 凹 자형 못에 돌 이름 제각각
‘문경 주암정’ 채익하 기려 1944년 세워…배 모양 바윗돌 인상적
봉화 청암정, 사적·명승으로 유명…달성 하엽정 수령 200년 나무 우뚝
안동 만휴정, 주변 폭포·계곡 인기…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촬영지
영양 서석지에 피어난 연꽃이 여름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듯 가볍다.
영양 서석지에 피어난 연꽃이 여름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듯 가볍다.

, 나무, , 바위 조합에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붓을 든다.

선과 색에 계절감이 실리고 화룡점정 청량감이 화폭에 담긴다. 한여름의 정원에선 들숨이 다르다.

정원 안에 머물던 산소가 와락 달려든다. 기습적인 상쾌함이다.

여름의 정원을 소나기 못잖은 청량감으로 소개하는 이유다.

사계절 뚜렷한 구분으로 시간관념이 철저하다. 봄에 태어나 기운을 틔워 성장하고, 여름에 무르익어 한창 기세를 뿜어 보인다.

가을이면 화려한 절정에 오르곤 물러갈 때를 비친다. 겨울이면 웅크려 다음 생을 예비한다.

무르익어 한창 때인 여름의 정원이다. 선조의 풍류에 여름 정원은 한 폭 그림이다.

여름 땡볕도 조도를 높여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영양 서석지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의 서석지(瑞石池)는 동래 정씨 집성촌 연당마을에 있다. 1613년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 정영방이 조성했다.

조선시대 민가정원으로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국내 3대 민간정원으로 꼽힌다.

서석지 관리를 맡고 있다는 정수용 씨가 연당마을 주변을 설명한다. 서석지 안팎의 자연지형이다.

입암, 석문, 자금병까지 물 흐르듯 설명한다. 주변 산세처럼 청산유수다.

서석지는 가로 13m, 세로 11m, 평균 수심 1.5m로 요() 자형 못이다. 이름처럼 상서로운 돌이 못 안 가득이다.

돌은 보기 드문 광석이거나 보석이 아니다.

상서로움은 정원을 만든 이의 심성에서 왔다. 돌마다 제각기 이름을 붙였다.

상서로운 구름 상운석(祥雲石), 떨어진 별 낙성석(落星石), 눈 흩날리는 징검다리 쇄설강(灑雪矼), 나비가 노는 바위 희접암(戱蝶巖) 등 한참을 바라보아야 붙일 이름이다.

전체 공간이 넓진 않다. 그러나 각 공간마다 의미를 부여했다.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 압각수(鴨脚樹)를 비롯해 정원 모든 구성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정자인 경정(敬亭)과 서재인 주일재(主一齋)에서 낮잠이나 책읽기에 빠져 있으면 돌과 나무들이 제가끔 연꽃과 어울려 수런수런 얘기를 나누거나 날벌레들의 안부를 물으며 뭔가 바쁘게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다.

 

문경 주암정은 배 한 척이 연꽃 바다를 건너는 모양새다.
문경 주암정은 배 한 척이 연꽃 바다를 건너는 모양새다.

문경 주암정

주암정(舟巖亭)은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에 있다. ‘서중리 41-2’로 입력하면 쉽다. ‘웅창마을이라 불리는 곳이다.

한 번 보면 왜 주암정인지 안다. 정자를 받친 바윗돌이 배 모양이다.

적당히 닮은 걸 꿰어 맞춰 이름 붙였다기보다 날렵한 선두 모양의 바위는 척 봐도 배 모양이다.

여름에는 연꽃과 능소화가 주인이다. 연꽃이 배 모양 바위 주변에 몰려 붙은 모양새다.

1673년 마흔의 나이로 생원시에 합격해 성균관 생원으로 공부했던 주암 채익하를 기려 1944년 세운 정자라고 한다.

1944년이라니 사람으로 치면 매우 어린 나이다. 가까이서 보니 고풍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지붕 등 일부는 비교적 매끈해 전통미가 떨어진다. ‘주인이 업서도 차 한 잔 드시고 가세요라 정자 기둥에 붙여놓은 글귀가 정겹다.

상자 째 놓인 커피믹스가 폭양 아래서도 달짝지근해 보인다.

봉화 청암정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청암정(靑巖亭)은 벼슬에서 물러난 선비가 낙향해 지은 건축물이다.

풍광이 뛰어난 물가에 정자를 지은 게 아니다. 벼슬이나 당파싸움에서 벗어나길 원했던 목적성에 맞게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심정이 반영됐다.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를 둘러싼 연못과 왕버들이 그림이다. 검소하고 겸손한 색채다.

비 오는 날 운치가 배가되는데 육감을 자극한다.

빗물을 맞은 청암정의 색깔은 도드라지고 꽃과 나무를 때리던 빗물은 향을 껴안고 못에 떨어진다.

청암정은 가까이에 있는 석천계곡과 함께 국가가 인정한 사적 및 명승이다.

조선 중기 실학자 이중환은 일찍이 택리지에서 손꼽히는 경승지로 이곳을 꼽았다.

 

달성 하엽정 연못에 연꽃이 가득하다.
달성 하엽정 연못에 연꽃이 가득하다.

달성 하엽정

연못은 연꽃 천지다. 여름 햇빛이 연꽃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눈이 부신다. 물고기가 그 사이사이 길을 항로처럼 헤엄친다.

연못 중앙 작은 섬은 새들의 휴식처처럼, 물고기를 염탐할 기지처럼 솟았다. 단풍나무, 목련이 못 주위에 둘러섰고 담벼락엔 수령 200년이 넘은 참나무와 탱자나무가 서있다.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삼가헌 외별당 하엽정’(荷葉亭)이다.

직사각형 연못과 둥근 섬이 조화를 이룬다.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을 뜻한다. 우주의 축소판이라는 의도는 전달받지 못한다. 지구의 평화로움은 확실히 느끼는 공간이다.

안동 만휴정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만휴정(晩休亭) 원림은 문화재청이 2011년 명승으로 지정한 곳이다.

마을 입향조 보백당 김계행이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지은 곳이다.

그는 내 집에는 보물이 없다(吾家無寶物). 보물이라고는 오직 청백이 있을 뿐이다(寶物惟淸白)’라는 유훈을 남겼는데 여름 가족단위 관광객들의 보석 같은 곳이 됐다.

특히 마을 주변 계명산자연휴양림과 폭포, 계곡 등으로 피서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해 여름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으로 유명세를 치른 곳이다. 이곳 주민들의 말을 빌리면 마카 다리 우에 서가이고 사진 찍는데 다리가 안 뿌아지가 다행이었다.

대부분 만휴정으로 이어지는 다리 중간에 서서 사진을 찍고 간다는 것이었다

송암폭포와 너럭바위, 그리고 숲이 조화를 이루면서 만휴정 건물이 거드는 모양새다.

만휴정 뒤로는 계명산, 앞으로는 금학산과 황학산이 겹겹으로 둘러싸고 길안천까지 흘러 절경이다.

매일신문=김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