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餓死)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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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아사(餓死), 굶어 죽음. ‘기아(飢餓)에 허덕인다.’는 1950년대의 가난이었다. 요즘은 거의 없다. 사람이 기아로 인해 죽는다면 소름이 돋을 일이다. 사고로 못 나올 곳에 갇혔다거나 고립됐다면 모른다. 한데 지금 세상에 굶어 죽은 일이 일어났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서울 한복판에서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는데 사실이었다.

임대 아파트애 살던 40대의 여인이 6살 아들과 함께 굶어 죽은 채 발견됐다. 참혹하다. 시신 부패 정도 등 정황으로 미뤄 죽은 지 두 달이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죽음은 수도 검침원에 의해 알려지게 됐다 한다. 몇 달째 요금미납으로 단수조치가 된 후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상히 여겼던 것.

발견 당시, 방안엔 오랫동안 음식을 해 먹은 흔적 같은 게 눈에 띄지 않았고, 텅 빈 냉장고 안에 먹을거리라곤 고춧가루뿐 다른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 여인의 통장엔 지난 5월 3858원을 인출한 뒤 0원 상태였다는 것. TV에서 본, 철없는 어린 애가 그렸을 낙서, 흑백으로 그린 팔 벌린 사람 또 뜻 모를 기호들….

우리는 이처럼 안전망이 허술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 아무리 낯선 곳이라 하나, 또 젊은 엄마가 부적응해 사회와 교류를 끊고 지냈다 하나 사람 사는 세상 아닌가. 손 놓고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면, 숨져 간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이곳에 10년을 머물렀다면 어떻게든 모자가 굶주림 끝에 죽진 않았어야 한다.

하나원에서 생활하며 이곳에 뿌리내리려고 무던히 애썼다지 않은가. 제과·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정착의지가 강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날 만큼 의욕적이었다는 뒷얘기에 가슴 쓸어내린다. 중국 동포와 결혼했다 이혼한 뒤 기반이 흔들린 데다 아들이 아파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북한이탈주민들은 취업, 교육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기간이 5년이다. 그 기한이 지나면 정상적으로 안착됐다고 봐 버린다는 것. 18개월간 건강보험료가 체납된 건 물론 수개월간 단전·단수 상태에 있었지만 그들이 사회안전망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된 것이다.

이런 경우를 찾아가는 발굴시스템이 가동하고 있다지만 역불급인 게 아쉽다는, 이 분야 종사자인 한 사회복지사의 말이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게 이번 모자의 참사다. 급속도로 개인화하는 사회 분위기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복지시스템의 빈약함을 알고도 방임한다면 이번 같은 참사가 잇따라 빚어질 수밖에 없으니 못내 안타깝다.

이들이 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명백히 밝혀진 건 없다. 하지만 아직도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의 충격이 그대로 남아 있다. 풍요의 시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한의 행복을 누리는 시절에 사람이 굶어 죽었다니. 혹여 북한이탈주민이라는 특수성이 크게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얼마 전, 남북하나재단이 밝힌 자료를 보면, 북한이탈주민 40.3%가 가구소득 2000만원 미만이라 한다. 턱없이 모자라긴 하나 굶을 만치 절대빈곤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이탈주민, 그들은 자유를 찾아, 배고픔을 털어내려 생사의 고비를 넘어온 이들이다. 이곳에서 호사는 못 누릴지언정 아사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고귀한 자유까지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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