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그리움의 추억 한 조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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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한림읍 협재리 돌빛나예술학교(下)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계절, 잊혀지지 않는 그때의 기억
나를 뒤돌아보게 만드는, 버거운 일상에 보내는 자연의 손짓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돌빛나예술학교에서 진행된 바람난장 여름 무대. 짧지만 긴 여운으로 남는다. 공연마다 녹아있는 삶과 사연을 만났고, 올해의 반을 달려온 무대 위에서 우리는 자신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게됐다. 유창훈 作, 섬 그 바람의 울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돌빛나예술학교에서 진행된 바람난장 여름 무대. 짧지만 긴 여운으로 남는다. 공연마다 녹아있는 삶과 사연을 만났고, 올해의 반을 달려온 무대 위에서 우리는 자신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게됐다. 유창훈 作, 섬 그 바람의 울림.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계절입니다. 바쁜 일상 과감히 접고 산으로 바다로 발길을 돌리고 싶은 여름입니다. 이 맘 때면 늘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까만 밤하늘 위로 별들이 총총 떠 있는 늦은 밤이었습니다. 교복 치마 대신 할머니 고무줄 바지를 빌려 입은 소녀들이 널찍한 평상 위에 대자로 누웠습니다. 바람에 식어가는 흙냄새 돌 냄새, 뭉근하게 끓여낸 할머니 호박죽 냄새, 짭조름한 바다 내음, 달빛 아래 환한 보랏빛 꽃잎들까지, 동구 밖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우리는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까르르 까르르 배꼽을 쥐었습니다. 그런데 낮에 먹은 수박이 화근이었습니다. 누구랄 것 없이 맨발로 화장실로 뛰어가는데, 시골집 화장실은 왜 그리도 멀고, 어둡고, 무서운 지. 그렇게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퉁퉁 부운 얼굴로 맞이한 협재 바다의 아침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추억입니다. 연극인 정민자 님의 시낭송에 그 눈부신 추억 한 조각을 꺼내 봅니다.

 

푸른 일획(一劃)이다
이 세상 다시 오면
여기를 가장 먼저 달려와 보고 싶다
아련한 가을비 속에
죽은 고모 이마보다
찬 바다!
 
-장석주협재바다전문

얼마나 간절한 그리움이기에 시인은 바다를 보며 죽은 고모 이마를 떠올렸을까요. ‘이 세상 다시 오면/여기를 가장 먼저 달려와 보고 싶은 바다’. 찬 바다는 어떤 슬픔에 잠겨있는 걸까요. 먹먹한 그리움이 물결을 따라 일렁입니다. 그 마음 살포시 어루만지듯 성악가 김지선 님이 부릅니다.

초겨울 초아기 배고 배불러 올 때도
물질 나갔지
전복 따서 아들 아이 학비 보내고
소라 따서 딸내미 머리끈 사고
문어 잡아 아방의 술값 치르고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어왔다
살다보면 살아진다
파도에 엄마가 띄워 보낸 말
욕심 내지 말라 물숨 먹을라
 
-‘물숨중 일부 (김진수 작곡, 작사)
 
 
김지선 성악가가 차갑고 거친 숙명의 바다를 음악에 녹여낸 ‘물숨’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먹먹한 그리움이 물결을 따라 일렁이며 우리들의 마음을 살포시 어루만졌다.
김지선 성악가가 차갑고 거친 숙명의 바다를 음악에 녹여낸 ‘물숨’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먹먹한 그리움이 물결을 따라 일렁이며 우리들의 마음을 살포시 어루만졌다.

섬의 시작이자 끝은 바다입니다. 차갑고 거친 숙명의 바다. 낯선 물 아래 세계. 바다로 나서는 걸음은 무섭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멈출 수도 없습니다. 바닷길이 인생길인 걸요. 제주의 해녀들입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바다에 뛰어드는 이 여인들의 기개는 언제나 놀랍습니다. 가늘고 긴 태왁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바다 한 가운데서 홀로 파도와 싸워온 그녀들입니다. 그 안에서 삶과 죽음은 백지 하나 차이.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서 평생 험난한 파도 위를 올랐습니다. 삶이 부대낄 때, 문득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떠오르는 이름, 해녀. 그 여인들의 검은 뒷모습이 건네는 귀한 한마디 같습니다. ‘살다보면 살아진다.’

 

김정숙씨가 이번 공연 반주를 맡았다. 낯선 물 아래 세계, 바다로 나서는 무섭고 두려운 걸음,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평생 험난한 파도위를 오른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음악이 가슴에 와 닿는다.
김정숙씨가 이번 공연 반주를 맡았다. 낯선 물 아래 세계, 바다로 나서는 무섭고 두려운 걸음,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평생 험난한 파도위를 오른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음악이 가슴에 와 닿는다.

협재돌빛나예술학교에서 진행된 바람난장의 여름 무대는 짧지만 긴 여운으로 가득했습니다. 무대마다 녹아있는 삶과 사연을 만나다 보니 마침내 자신을 보게 됐습니다. 그 여정에 저는 행복했습니다. 파도 위로 노을빛이 떨어집니다. 여름의 잔해와 가을의 시작이 함께 어우러져가는 표정입니다. 여름은 이렇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힘겹고 버거운 우리의 일상에 보내는, 잠시 쉬어가라는 자연의 손짓이겠죠. 얼마 남지 않은 여름, 주저하지 말고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에게도 오늘을 살게 하는 그리움의 추억 한 조각 있지 않나요.

사회=정민자
그림=유창훈
시낭송=정민자·강상훈
성악=김지선
반주=김정숙
무용=장은
사진=허영숙
영상=김성수
음향=최현철
현장감독=김명수
=김은정
후원=제주특별자치도·제주·제주메세나협회 등

다음 바람난장은 24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동홍동 소재 정방폭포 앞 바다 선상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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