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서귀포시의 문화자산, 이중섭 작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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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

1951년, 피난민 화가로 이중섭이 서귀포에 머문 기간은 약 1년이다. 관점에 따라 1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이다. 그러나 이중섭미술관에서 생각해보면 이중섭이 서귀포에 머문 기간의 길고 짧음보다 이중섭과 서귀포의 인연, 그 자체가 더 소중하다. 서귀포의 문화자산으로서 이중섭은 무한한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로서 문화산업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한다. 이에 각 지자체는 지역문화자원 발굴에 심혈을 기울인다. 서귀포는 1997년 이중섭 거주지를 복원하고, 2002년 이중섭전시관을 개관해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 앞서 작가미술관(Single-artist museum) 건립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유럽은 우리보다 훨씬 먼저 작가미술관 건립으로 거대 문화산업을 일으키며 수혜지가 됐다.

세계적인 작가 미술관 건립 사례는 작가의 고향, 혹은 작업실이 있었던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몬카타 거리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은 1963년 개관했다. 피카소는 미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1895년 13세에 바르셀로나에서 학교를 다녔고, 19세 이후에는 주로 프랑스와 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앙티브에도 1966년 문을 연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앙티브는 피카소가 1946년 9월부터 12월까지 작업을 했던 곳으로, 당시 피카소의 작업실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1985년 개관한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의 피카소 미술관은 피카소가 스페인 출신이지만,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파리에 세워진 것이다.

1919년 개관한 국립 로댕미술관은 비롱저택과 로댕의 조각 작품을 전시한 정원으로 꾸며졌다. 로댕은 거의 파리 근교 뫼동 지역에서 작업을 했지만 1908년부터 1917년 세상을 떠날 때가지 비롱저택에서 활동했다. 로댕이 살던 뫼동 주택은 로댕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또 로댕 작품 애호가의 컬렉션에 의해 미국 필라델피아에도 로댕미술관이 세워졌다.

네덜란드의 세계적 거장 렘브란트는 그림으로 생전에 부를 이뤘지만 돈 관리를 못해 말년에 허름한 집에서 궁핍하게 살았다. 1900년대 초반 암스테르담 시는 렘브란트가 살던 집을 사들여 복원한 후 렘브란트 하우스박물관으로 개관했다.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 미술관의 건립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미술관의 건립이 고향 출신이건, 얼마를 머물렀건, 지역이나 국가에 연고가 없을지라도 한때 작업했거나, 수집된 작품이 좋으면 미술관을 건립해 해당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삼았다.

잠시 이중섭미술관을 회고해보자. 현재 도쿄에 사는 이중섭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한국이름: 이남덕) 여사의 증언처럼 이중섭가족이 피난이후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곳이 바로 서귀포다. 무엇보다도 서귀포시대 이후 서귀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蟹)’ 와 ‘우럭’ 도상이 이중섭 그림에 가족과 함께 새롭게 등장했다. 전쟁 중이었지만 <서귀포의 환상>과 같은 명작도 남겼다.

이중섭의 예술적 가치는 21세기 서귀포의 문화자산으로서 미래의 성장 동력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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