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신보
  • 승인 20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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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이따금, 밥을 받고 앉아 성호를 긋는 기독교인 앞에서 수저를 집으려다 멈칫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 마음속으로 외우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식탁이 경건해진다.

생략되고 절제된 짧은 의식이 밥에 대한 사고의 빌미를 제공한다. 밥은 단순하지 않다. 속에 땅과 물, 불과 바람, 이슬과 빗물이 스며있다. 공깃밥 한 그릇 옆에다 무 배춧국에 김치 한 접시로 놓인 밥상에서 나는 지구와 우주와 인간을 생각한다. 이제 철이 드는가.

아잇적에 먹던 밥들이 각각의 얼굴과 그때의 풍정(風情)으로 떠오른다. 산업화 이전 농촌이 그랬지만, 보리밥?조밥?고구마 밥?톳 밥?수수밥?범벅 따위. 그중 고구마 밥과 톳 밥은 순수하지 않았다. 좁쌀에 그것과는 이종(異種)인 고구마와 톳의 혼합으로 이를테면 요즘의 퓨전이거나 하이브리드다. 좁쌀은 이른바 ‘눈 밝은 닭이나 주워 먹음직’했으니 딴은 서러운 시대의 고단한 풍경이었다.

반지기란 밥이 있었다. 서속밥 안친 솥 한구석에 산도(山稻) 쌀 두어 줌 섞어 양은냄비에 얹던 그 밥, “오늘, 네 생일이구나, 많이 먹고 학교에 가거라.” 내 생일 아침이면 해마다 어머니는 으레 그렇게 한마디 남기고 잰걸음으로 어둑새벽 집을 나섰다. 순간, 어머니 등 뒤에 가 있던 눈이 촉촉했다. 말 그대로 반반 섞어 지은 밥이 반지기다. 나는 지금도 생일을 맞으면 옛날 어머니의 그 밥을 떠올린다. 어머니가 그립다.

1960년대 초였을까. 알량미란 수입쌀이 한국인의 밥상에 반반히 오른 적이 있었다. 베트남산인 걸 알게 된 건 세월이 지난 후였다. 베트남의 한자 차자(借字)가 안남(安南)이고, 이 말이 활음조로 소리 내기 좋게 변해 알량미였다. 차지지 않아 메조처럼 알알이 따로 놀았다. 조악했다. 그래도 그 밥이 목을 넘었으니, 그래서 한국인의 특성을 끈기라 했는지도 모른다.

밥이라고 다 밥이 아니다. 때와 곳, 누구와 함께 하느냐 그리고 왜 먹느냐에 따라 사색의 실마리를 풀어 나갈 때 그 맛은 평소와 썩 다르다. 의미가, 내게로 오는 무게가 다르다. 밥은 삶의 준거(準據)다. 온갖 행동거지가 다 밥에서 발원한다. 우리는 밥에 울고 웃는다. 실제 그러면서 궁핍과 첨예한 대립 속에서도 어두운 역사의 터널을 지나왔고, 암울하던 세월의 강도 건넜다. 관념적?철학적 사변을 떠나 있는 게 삶이고 현실이다. 때론 단순할 필요가 있다. 얼토당토않아도 살기 위해 먹어야 했고, 먹기 위해 살아야 했다. 밥이란 것을 말이다.

소박한 식탁이었다. 어느 스님이 손수 삶아 낸 소면에 진한 콩국물을 붓고는 합장해 공양송을 읊었다 한다.

“이 밥은 대지의 숨결과 강물의 핏줄,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로 빚은 모든 생명의 선물입니다.” 함께하던 사람들, 종교를 떠나 조촐한 밥상에서 작은 감동을 공유했으리라. 종교는 뒤의 문제다.

점심을 해결해야겠다. 숟가락 들고 밥공기에 먹을 만큼의 양을 뜨려다 주춤거린다. 스님의 공양송을 떠올린다. 생명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샘솟고, 나는 열락의 문턱에 든 것 같다. 밥에 감사하니, 심신이 한없이 평안한데, 이유는 알 듯 말 듯하다.

다만 지금도 옛 어른의 말씀이 귓전에 생생하다. “이거니 저거니 해도 밥 이상이 웃나. 밥이 보약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