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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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림 수필가

어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으로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등록증’ 카드를 받았다. 소중한 것처럼 지갑을 열어 다른 카드와 나란히 꼭꼭 눌러 넣었다. 얼마 안 남은 내 삶에 한 가지 정리를 잘한 것 같아 안심이 된다.

남편이 일찍 고향을 떠나 서울,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심장마비로 큰 수술을 하고 몇 년 못 산다는 진단을 받았었다. 부랴부랴 부모님 곁에 묻히려고 떠난 지 60년 만에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어릴 때 동네 친구와 초등학교 동창들과 어울리며 12년 넘게 이곳에서 잘 살고 있다. 고향이라는 응어리를 가슴에 달고 살다가 풀리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건강해졌다.

어머니 묘소를 찾는 날이 제일 행복한 날이다. 고향의 힘이란 대단하다.

얼마 전 남편과 제일 가깝게 지내던 고향 친구를 먼저 보냈다. 세월이 갈수록 이래저래 몇 안 남은 친구 또 한 분을 잃어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일찍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에 성공하여 부유하게 살다가 말년에 고향 제주로 돌아와 우리와 잘 어울리며 지내다 돌아가셨다. 당뇨와 고혈압으로 치료를 받다가 합병증이 시작돼 병원에 입원해 11개월을 지내다 가셨다. 회복이 불가능했음을 인지하고부터는 죽음의 불안이 이성을 마비시켰는지 삶의 본능이 강하게 살아났다. 평소 말씀과 달리 차마 볼 수 없는 모든 고통도 악을 쓰고 참아 내면서 끝까지 희망을 찾으셨다. 본인의 고통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간호에만 매달리는 식구들의 고생도 힘겨웠고 어쩌지 못하고 병문안 가서 지켜만 보는 주위 사람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병문안을 가서 “우리도 곧 따라 갈 테니 먼저 가서 맛집이나 알아놓으세요. 거기서도 어울려 다녀야지요.” 민망한 말을 농담이라고 해놓고 오는 길에 남편과 같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들러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주저하지 않고 서명을 했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미리 내 의사를 밝혀 놓는 서류다. 누구나 앞일은 모르므로 19세부터 서명할 수 있다고 한다. 서류 한 장에 모든 치료는 하지 않는다고 체크하고 한 가지 고통을 덜 수 있게 진통제만 써달라고 체크했다. 나도 고생하면서 처참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지 않고, 가족들의 간호에 어려움도 덜어 주고, 건강 보험의 치료비도 아껴 주고, 병원의 복잡함도 도와주는 아름다운 길인 것 같다. 정신 있을 때 미리 서명을 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친구가 떠나고 3주 후에 미국에서 가슴 철렁한 소식이 왔다. 한국 부인과 부러울 것 없이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던 미국 친구가 8개월 병원생활 끝에 돌아가셨단다. 최고 학부에 백악관을 드나들던 친구다. 미국에 가서 멀쩡한 분을 뵙고 온 지 1년 전이다. 불편하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겠지만 8개월 병원 생활을 전해 듣고 놀랐다. 회복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끝까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고통을 이겨내며 처참한 모습을 보였다는 소식에 나는 멍해졌다. 제주 친구의 마지막 모습과 어찌 이리 같은지.

어떤 삶을 살았든지 그 끝은 똑같이 괴롭고 허무했다.

때가 되면 가야 한다는 확실한 진리를 우리는 왜 이리 받아들이기 힘든지. 삶의 미련 때문일까. 사후를 모르기 때문에 겁이 나서일까.

삶이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함을 말한다는 명언이 있지만 나이 든 우리에게 그게 마음대로 되는가. 그냥 열심히 노력할 뿐이지. 그래도 될 때는 평안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는 것도 좋은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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