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생각하며
뿌리를 생각하며
  • 제주신보
  • 승인 2019.09.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복언, 시인·수필가

며칠 전 모둠 벌초를 다녀왔다. 친족 공동묘지엔 38기 조상들 산소가 평안한 내세의 삶터가 되고 있다. 주변이 트이고 멀리 바다도 내려다볼 수 있는 지형이어서 괜찮은 자리라고 여겨진다.

친족 여럿이 참여하여 풀을 베고 치우는 데 땀방울을 흘린다. 가만 돌이키니 나도 예초기를 짊어진 지 30년이 된 듯하다. 쪼그려 앉아 낫질하던 시절과 비교하니 그 효율이 새삼스럽다. 그런데도 올해는 허리와 팔 근육이 몸살을 앓는다. 나이 드는 현상이기도 하겠지만 정밀 건강 검진을 받으라는 신호일 것이다. 이까짓 일에 몸이 주저앉는다면, 웬 생각에 덜컥 겁이 난다. 불어나는 약봉지에 오래 의존해 오지 않는가.

부모님 산소의 잔디를 깎으며 불효했던 젊은 시절 투정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어머니, 나 무사 이추룩 낳읍디가?”

“나도 모르키여. 무사사 겅해신디.”

어느 부모도 자신이 원하는 자식 낳기를 소망하지만 그건 현대 과학으로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생명은 늘 신비롭다. 방싯방싯 웃는 모습만으로도 족하고 아장아장 걸음에도 환호하며 온갖 정성을 쏟는 게 부모다. 주어도 모자란 부모 마음과 받아도 부족한 자녀 마음은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사랑의 핵심을 읽을 것이다.

육체나 정신에 이상이 있는 자녀 앞에 서면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죄인이 되고 만다. 요즘 내 심정이다. 마흔의 중심으로 깊어 가는 큰아들의 이마에 생긴 혹 때문이다. 어릴 적에 몇 번 병원을 찾았지만 혹이 커지지 않으면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간 약간 커 가는 듯했지만, 그로 인한 불편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늘 머리를 늘어뜨려 볼록한 혹을 감춰야 하는 심정이 어떠할까.

회사 일로 몇 년 전에 이어 다시 미국에서 5년쯤 생활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곳 사람들은 주로 짧은 머리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한다. 공장의 책임자가 되려니 외모에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게 인간 삶이 아닌가.

골수종, 주어진 날은 한 달도 안 남았다. 무사히 수술 받고 임지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할 뿐, 무력한 아비가 뭘 더 어쩌겠는가. 사람은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안다. 부모의 후광을 업고 하늘을 나는 자녀들을 너무 부러워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뿌리는 생명체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문화의 발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옛것을 발전의 디딤돌로 삼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가장 지방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도 있다. 고유한 가치의 중요성을 잃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지난 74주년 광복절은 슬픈 풍경이었다. 날마다 극일을 외치며 감정 폭탄을 쏟아 붓지만, 펄럭이는 태극기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사해서 사는 마을에는 집마다 깃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30분 산책길에서 눈여겨보아도 태극기 걸린 곳은 열 손가락을 못 채웠다. 그래도 상상의 길로 이끈 집이 있었다. 큰길에서 30m쯤 들어간 골목의 오래된 조그만 슬레이트집이다. 대문 곁의 깃대에 내걸린 깃발이 눈부셨다. 주인은 어떤 분일지 모르나 아마도 살아 있는 정신의 소유자일 것이다. 존경하는 마음이 일었다.

개인은 에움길로 삶의 성찰을, 국가는 지름길로 국력을 배양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남 탓 하지 않는 진솔한 마음을 먼저 새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