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평국의 독립유공자 선정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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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前 백록초등학교장·동화작가

제7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제주 출신 독립유공자 4명이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강평국·현호옥 선생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교육운동을 펼친 배두봉 선생은 건국포장을, 법정사 항일운동을 벌인 이원영 선생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제주의 여성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은 이들은 고수선, 최정숙, 김옥련, 부춘화, 부덕량, 이갑문, 고연홍, 김진현이 있다. 3·1독립운동과 해녀항일운동에 참여했던 분들로 구국을 위해 헌신하고 불평등한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이시다.

강평국은 고수선, 최정숙과 함께 구마슬 신부에 의해 개교한 신성여학교 1회 졸업생으로 경성여고보 사범과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하여 79명의 소녀결사대와 함께 독립의 열망을 안고 서울거리를 달리며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강평국이 시위의 주동자였다는 것을 동기생 최은희(조선일보 기자, 최초의 여기자)의 저서에도 나타나며, 최정숙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몸이 작아 식모방 창문을 넘나들며 소식을 전한 분이 강평국이었다. 만세를 부르며 걸어가다 일본 기마병에 쫓겨 어느 집에 들어가 병풍을 지고 앉아 새색씨처럼 보이게 하여 잡혀가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국기 밑에서 일본국가를 부르는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다며 최정숙과 함께 제주로 내려온 강평국은 대정, 조천, 제북보통학교 교사를 하며 야학인 여수원과 명신학교 운영에 앞장서며 여성인권신장과 문맹퇴치에 앞장서다가 일본으로 유학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제주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해외 유학생이 되었다. 1927년 조선여자청년동맹 초대 집행위원장, 1928년에는 여성단체인 근우회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중병에도 학업과 독립운동을 병행하다 병이 악화되어 제주로 돌아왔다가 진도보통학교 교사 시절의 항일운동이 탄로나 잡혀갔다가 돌아와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황사평에 묻혔다.

지난 7월 20일, 제주학생문화원에서 ‘3·1운동과 제주의 여성 운동’이라는 심포지엄이 천주교제주교구 100주년 기념위원회 주최로 열렸는데, 문창우 비오 주교의 ‘3·1운동과 한국교회의 발자취 그리고 성찰’이라는 기조강연과 허영선 제주 4·3연구소장의 ‘여성사로 본 제주의 3·1운동’, 윤선자 전남대교수의 ‘한국사로 본 제주의 3·1운동’, 역사학 박사 박찬식의 ‘교회사로 본 제주의 3·1운동’을 재조명하였다. 심포지엄에서 허영선은 ‘강평국, 그는 왜 아직도 미완인가’라는 주제로 경성여고보 3인방 중에서 강평국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고수선이 1980년, 최정숙이 1993년 독립유공자 표창을 받았으나 강평국은 일찍 사망했고, 가족이 없어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했으나 신성학원 동문들과 천주교제주교구, 제주도내 신문사와 방송사의 노력으로 마침내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제 3·1운동에 참여했던 제주의 세 여성이 모두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독립운동에 참여하고도 인정을 못 받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을 발굴하여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게 하는 것이 후손들의 도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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