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가위엔
올 한가위엔
  • 제주신보
  • 승인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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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추석.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며 소망하던 그 명절이 곧 다가온다.

작년이었나? 한 방송사 뉴스 시간, 추석 연휴를 맞아 인천 국제공항을 빠져나가는 여행객을 취재하여 방영해준 적이 있다. 발 디딜 틈 없이 출국하느라 꽉 메운 공항 모습을 보던 아들 녀석이 기다린 듯 ‘대세’란 말을 보태며 말했다.

까짓것, 우리도 여행이나 가자고 말이다. 명절은 어떻게 하고 가느냐며 생각지도 않던 어이없는 말에 실없이 응수했다. 아들은 준비해 둔 모범답안처럼 인터넷에 떠도는 글도 못 읽어 봤냐고 운을 떼며 말했다. 요즘엔 조상 덕 있는 사람은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 없는 사람은 남아서 명절이나 지낸단다. 순간 ‘명절이나‘라는 말에 방점을 두며 눈을 흘기자, 자기 말이 아니고 ’떠도는 말’이라고 계면쩍어 해명하느라 바빴던 기억이 난다.

‘떠도는 말’이라는 두 어절에 잠시 생각이 멈추었다. 그 말에 은근슬쩍 편승하고픈 아들의 내심과 어미의 반응을 떠 보자는 의중 사이, 불분명한 감정이 생각의 말미로 잦아들어 혼란스러웠다. 심드렁하게 흘렸지만, 말의 의미를 해체하여 곱씹어 보니 말이 영 안 되는 것도 아닌 듯 했다.

빛의 속도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20, 30년 전 언저리에서 태어나 다음 세대를 잇는 아이들이다. 이곳 소도시에 살며 집하나 마련하는 것도 버거워지다 보니 조상 덕과 아닌 경우로 확연히 구분 짓게 되어 버린 걸까. 부모를 잘 만나거나 말거나 큰 의미도, 비중도 없었던 우리 세대와는 생각이 천양지차다.

요즘 들어서야 이러저러한 말들을 주워듣다 보니, 그도 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그런 생각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경스러워 얼른 아닌 척 감정을 숨겨야 옳았던 세대다. 노력해 봐도 힘들 것 같은 막막함은 능력의 한계로 이어지며, 조상 덕도 능력으로 간주되고 운과 자기노력의 경계가 모호해서일까. 명절이 조상 덕을 보는 쪽과 조상 덕 없는 쪽으로 양분하려는 사고와 대세라는 말이 영 거슬려 씁쓸했다.

변명처럼 복은 짓는 것이고 덕은 누리는 것이라고 말한 뒤, 복을 지은 후 누리지 못하는 것을 탓해야 된다며 도덕책 읽듯이 말하곤 어정쩡한 시간을 밀어내었다. 명절도 전에 비해 많은 부분 간소화되었고, 바쁘다는 구실을 들이대며 편리성이 더 강조되고 있다.

정성을 더하여 자손들이 조상님께 예를 올리는 큰 명절 추석. 못났다고 내 자식이 내 자식 아닐 수 없듯, 역으로 덕을 못 본다고 내 조상 또한 내 조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새로 수확한 햇과일과 햅쌀로 음식을 장만하고 가족들이 한데 어우러져 차례를 지내며 즐거운 시간 갖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제주속담에 ‘지싯물도 떨어지는 곳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처마 밑 낙숫물도 떨어져 고이는 자리에 고인다는 말이다. 내가 하는 일들이 알게 모르게 후손들에게도 스며들기에 매사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더도 덜도 아닌, 한가위 같았으면 했던 바람이 부족함에서 풍족함으로 바뀌며 그 색깔마저 변질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늘 한 언저리가 기울 것 같은 보름달이 뜨는 팔월대보름. 초저녁 하늘에 걸린 개밥바라기별도 한가위엔, 포만감으로 달빛에 기대어 쉬다가 그 새벽, 이슬과 함께 여전히 동녘 하늘 샛별로 반짝였으면 좋겠다.